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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비 내리는 앞산에서 꾸는 발칙한 꿈 ▲ 앞산꼭지들의 작은 성인 18미터 높이의 ‘나무 위 농성장’은 앙상한 나뭇가지로 썰렁했던 겨울과 달리 이미 녹음으로 우거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긴 했으나 가뭄 해갈은 커녕 땅을 적시다 말았다. 강원도는 눈이 내려 차량이 거북이 운행을 할 정도였다는데 같은 한반도 남녘땅에 왜 이리도 불공평한지 모를 일이다. 한심한당의 텃밭인 대구는 정녕 버려진 땅인지 헷갈리기만 한다. 정말 하느님 원망만 떠오른다. 일요일 밤 당번이라 농성장을 지키는데 비가 많이 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농성장 천막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체감 온도까지 떨어져 몸에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전열기를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날씨가 풀렸다고 천막 지붕 쪽의 막은 것을 털어 놓았는데 솔솔 새는 찬바람이 제법 몸을 움츠려 들게 한다. 비가 그치.. 더보기
앞산에서 떠 올리는 부활의 의미 ▲ 건설자본과 권력이 야합해 파괴한 앞산 달비골의 숲, 끝을 모르는 인간의 탐욕이 낳은 재앙이 온다는 것을 모르는 멍청한 짓이다. 이번 일요일은 죽어서 무덤에 묻힌 예수가 살아났다는 부활절이었습니다. 팔레스틴 촌놈으로 태어나 남들이 기피하고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하던 별종이요, 철저히 왕따를 당한 예수는 분명히 십자가에 처형당했는데 무덤을 덮고 있던 돌이 파헤쳐져 있어 죽지 않고 부활했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진보적인 신학자나 성서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부활신화’로 표현하며 ‘부활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의미’를 더 소중히 여깁니다. 성서를 하느님 말씀으로 믿고 소중히 여기는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보면 그야말로 완전히 ‘날나리 신앙’이라며 기절초풍할 일임에 분명하자 이는 사실.. 더보기
앞산을 지키려던 한 겨울의 몸부림을 떠 올리며 겨우내 앞산을 지키기 위해 달비골 초입의 상수리나무 위에서 보냈습니다. ‘나무 위 농성’을 한 게 85일이었습니다. 골 안 쪽 보다 들머리가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 온도가 더 떨어져 지내기 힘들죠. 인근 장미아파트 7층 높이와 비슷하니 약 18미터 정도가 되니 바람이 여간 부는 게 아니더군요. 나무 위 농성을 ‘내가 하겠다’고 뱉어 놓고는 약속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적응 훈련을 하다 감기 몸살로 고생을 하고, 추운데 자고나니 근육이 긴장되어 허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러다 약속 못 지키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앞서더군요. 가장 싫어하는 게 약속 안 지키는 것인데 내가 못 지킨다면 사람들 얼굴을 볼 수가 없어 이만저만 머리가 복잡하지 않았습.. 더보기
앞산에 핀 아름다운 야생화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이렇게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이 야생화는 누가 키운 것도 아닌 저절로 자란 것이죠. 이처럼 아낌없이 주는 자연을 그냥 두고 지켜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지 ‘개발’이란 이름을 갖다 붙여 파괴하는 것은 배신행위임에 분명합니다. 맑은 공기와 좋은 물과 아름다운 숲을 주는 자연일 보존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파괴한다면 ‘못난 조상’이란 욕을 얻어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가입한 카페인 ‘’부경야생화에서 퍼온 야생화사진입니다. 꽃 이름을 아시는 분의 해설을 부탁드립니다. 더보기
앞산 달비골 싸움의 ‘아름다운 패배’를 인정하면서 3월 19일 달비골의 벌목 저지 싸움이 일방적으로 밀리면서 앞산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허탈과 좌절에 빠졌을 줄 압니다. 저는 넋 나간 사람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헤맸습니다. 상수리나무 위에서 내려온 후 일주일 동안 술에 절어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진이 빠지고 쳐져 본 적은 없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경찰서로 출두한 사건 역시 준비한 방향과 엉뚱한 곳으로 일이 벌어지면서 더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 딴에는 미리 연락하고 최악의 경우 면회 연락책이라도 준비된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라 더 놀랐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국립호텔 가기 5분 전 문제가 풀려 검찰청 구치감에서 나오면서 ‘맞다, 우린 졌으나 아름다운 패배’라는 느낌이 불현듯 들면서 앞산터널.. 더보기
앞산의 봄을 시샘하는 달비골의 꽃샘추위 달비골 상수리나무를 내려가면서 북풍한설 몰아치던 엄동설한을 보내고 달빛고운 마을 달비골 상수리나무에도 봄은 찾아왔습니다. 잘려나간 나무들의 상처 마냥 꽃샘추위가 몰아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수리나무 위 우리들의 작은 성인 ‘나무 위 농성’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봄이 벌써 왔음에도 불구하고 시샘하는 꽃샘추위는 우리를 잠시 움츠리게 합니다. 그러나 정작 추운 건 우리 몸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새 봄이 이미 왔기에 새 생명을 틔울 준비에 바쁜 나무처럼 희망이라도 있다면 이깟 추위쯤이야 너끈히 견뎌낼 자신이 있습니다.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말이 딱 맞는 시점에 제가 상수리나무 위를 내려오려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아마 앞산을 아끼는 많은 분들과 앞산꼭지들의 마음 또한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보기
앞산달비골 ‘나무 위 농성’ 100일을 보내면서 오늘이 앞산터널 반대 ‘나무 위 농성’을 시작한지 100일째입니다. 온 종일 머리만 복잡해 오지도 않는 낮잠을 자다 깨기를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농성을 하면서 낮잠을 거의 자지 않았는데 달비골의 나무가 무참히 잘려나간 3월 19일 부터 그만 생활리듬이 깨져 수시로 낮잠이 쏟아지곤 합니다. 의욕을 잃은 탓인지 무엇을 해도 신명도 나지 않고 그냥 시간만 보내는 게을러 진 저를 돌아봅니다. 작년 12월 14일 엄동설한에 농성을 시작해 100일을 넘겼으니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농성이라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작은 힘이나마 모아 100일을 버텼습니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엄동설한의 추위를 넘기는데 탈은 없을지 걱정도 많이 했지만 희한하게도 몸이 적응을 해 농성으로 인해 건강을 상.. 더보기
남문사로 올라 본 앞산의 봄소식 절 집이 아름다운 앞산 남문사를 통해 등산을 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봄소식이 하루하루 다르게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앞산은 대구의 상징이자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구시민의 자연공원이자 대구의 허파요 심중부인 앞산에 무려 4.5킬러미터나 넘는 터널을 내겠다는 대구시의 발상에 웃음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도 도심 가까이 있는 산에 이런 몰상식한 짓을 하는 대구시의 발상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는 게 좋다는 것은 상식이건만 상식을 과감히 무너뜨리는 전국 꼴찌의 행정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멋진 분이 찍은 사진을 담아왔습니다. 더보기
앞산의 봄소식을 전하는 이름 모를 들꽃 봄의 소식은 이름 모를 들풀과 들꽃이 먼저 전합니다. ‘봄이 왔으니 움츠려 있지 말고 기운내라.’는 말을 가장 먼저 하죠. 새 우는 소리 역시 마찬가지죠. 하루하루 우는 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뭇 생명들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인 앞산의 골짜기 중 계절의 변화가 가장 선명한 달비골에 몸을 담고 있으니 이런 호사를 누리는군요. 그렇지만 어둠의 세력은 있는 그대로 두면 되는 자연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파괴해 자신의 배만 채우려 합니다. 조상들이 물려주셨고 우리 후세들이 이용할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야 말로 ‘천벌 받을 짓’임에 분명하죠. 들꽃이 전하는 봄기운을 같이 즐겨 보시죠. 제가 가입한 ‘부경야생화사랑’에서 퍼 왔는데 이름을 잘 모르니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더보기
앞산 상수리나무 위에서 사랑하는 조카에게 사랑하는 조카 태현아 잘 지내니? 아무리 꽃샘추위가 발악을 해도 곳곳에 다가온 봄소식 앞에 밀려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순리’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깨닫는구나. 자주 얼굴 보지는 못해도 명절에는 보곤 했는데 큰 애비가 너희들 못 본지 제법 되었네. 마냥 어리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네가 벌써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 하는데 사정이 있어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난 지금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 작년 말부터 그곳에 지내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이상 아름답고 귀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지만 그것은 더 아름답고 귀한 일이고. 난 흔히 말하는 농성을 하고 있어. 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