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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는 ‘경찰력은 공권력’이 아닙니다. 공정하지 않은 경찰병력 투입은 공권력이 아닌 폭력 언제부터인지 ‘경찰병력을 공권력’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진보 진영에서도 그렇게 부릅니다. 전두환 정권 때부터 경찰병력을 공권력이라 부르도록 언론에 압력을 넣은 것으로 압니다. 공권력(公權力)을 국립국어원이 발행한 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국가나 공공 단체가 우월한 의사의 주체로서 국민에게 명령하고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이라고 나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이 되려면 공정해야 한다는 게 전제 조건임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걸핏하면 민사문제인 파업현장에 경찰력을 투입하는 걸 공권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요? 세계인권규약에 ‘노동조합의 파업을 공권력으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유엔 가입 국가인 대한민국은 이 규약을.. 더보기
쌍용차 파업 노조원…“77일간 우린 인간이 아니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여전히 투병 중이다 “함께 살자고? 지금 이건 다 같이 죽자는 것이다. 같이 살자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앞장서기는 싫었는데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노-노 갈등이 아니라,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미친 것이다.” 지난 5일 경찰이 쌍용차 노동자에 대한 진압 작전을 벌이던 시간, 평택 공장 정문 밖에서 만난 박 모 씨의 목에는 핏대가 서 있었다. 노조의 파업 76일째, 일명 ‘산 자’인 그는 이날 정문 밖에 있는 진보신당을 비롯한 여러 연대 단체의 천막을 자기 손으로 때려 부쉈다. “끝은 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복잡하고 힘들다. 이웃에 있는 옛날 동료들을 어떻게 웃으며 볼 수 있을까 싶다. 아무리 회사가 시켰다 하더라도 어떻게 우리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새총으로.. 더보기
정리해고는 쌍용차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리 해고 반대 전국적 투쟁이 필요하다 쌍용차 노동조합의 점거파업이 결국 사측의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것으로 종료되었다. 쌍용차 지부는 담화문을 통해 ‘정리해고를 막지 못해 죄송하다’고 밝히며 전국의 동지들에게 ‘아직 끝나지 않는 정리해고 저지 투쟁’을 부탁하였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공권력의 살인적 폭력과 물과 의료품마저 반입 금지된 생존의 한계 상황 속에서도 77일간 점거 파업을 이어갔다. 이제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끝까지 지키고 연대하지 못한 우리가 그들의 요구를 다시 들고 싸울 차례이다. 한동안 보수언론을 앞세운 이명박 정권과 자본은 노동조합 때문에 회사가 파산에 내몰리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렀다며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더욱 높일 것이다. 이미 조중동은 다시는 이러한 일이.. 더보기
이명박이 대신할 수 없는 쌍용차 진압 경찰 폭력 점령군 같은 쌍용 진압 경찰…폭력경찰 청산해야 쌍용자동차의 옥쇄파업이 막을 내리고 주동자들에 대한 형사 처벌과 손해배상 청구가 뒤따르며 본격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연행자 96명 중 44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경찰은 투항한 노조에 5억원의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민주화된 사회에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폭력을 배제하는 정치형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당한 절차에 의해 행사된 공권력과 정당방위와 같은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폭력만이 제한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농성장 방어를 위해 사용한 ‘폭력’에 의해 처벌받는 것은 안타깝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함께 농성했던 조합원들을 한 명 한 명 포옹하면서 떠나보낸 노조지도부들도 그들이 구속과 손해배상이라는 평생 내려놓지 못할 짐.. 더보기
용산ㆍ쌍용차 사태 방관…일제 총독부도 이렇진 않았다. 1930년 고무공장 노동자 총파업 농성에 경찰이 중재 나서 1930년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고무공업도 불경기에 빠지자 조선의 고무신 업계는 평균 20% 임금 인하와 인원 감축에 들어갔다. 이에 평양 지역의 10여 개 고무신 공장 노동자 1800여 명은 8월8일부터 일제히 총파업에 돌입했다. 노동자들은 8월23일에는 1천여 명이 가두시위를 벌인 끝에 그중 200여 명이 4개소 공장을 점거해 신규로 채용되어 작업 중이던 노동자들을 밖으로 쫓아내버렸다. 곧 바로 무장경찰이 출동했지만 노동자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오히려 경찰 10여 명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공장 습격과 점거는 이후 일주일간 계속되어 연인원 5천여 명이 16번이나 공장을 습격해 점거했다. 삼엄한 일제강점기임에도 경찰은 탄압과 동시에 조정자를.. 더보기
앞산에서 고민하는 주위를 돌아보지 않은 죄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는 “나치는 맨 처음 공산당원들을 잡아들였다. 그러나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다음에 그들은 유태인들을 잡아 들였다. 그러나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그들은 노동조합을 탄압했다. 그러나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했다. 그 다음 그들은 가톨릭신자들에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나는 개신교도였기 때문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나에게 들이닥쳤다. 그때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며 통탄을 했습니다. 서울 용산과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권력과 자본이 ‘함께 살자’는 민중들을 몰아내고, 언론은 처절하기 그지없는 그 현장을 구경거리로 만들 때, 내가 철거민이 아니고 파업 노동자가 아니라고.. 더보기
옥쇄 파업한 노동자 가족이 겪은 악몽 77일간 얼굴 못 본 남편은 다시 경찰서로 “꼭 죽여야 끝나는가. 살고 싶다. 가족, 사랑해” 쌍용차 공장안 컨테이너 벽에 농성 조합원들이 써놓은 글귀입니다. 이 사진을 보고난 뒤부턴 이 글귀만 떠올리면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집니다. 내 남편, 우리 이웃의 남편들을 뜨거운 공장 속으로 토끼몰이 해놓고, 공중과 지상에서 도장공장 속에서 말려죽이고 때려죽이고 떨어뜨려 죽이려 한 국가권력과 자본의 잔인함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8월 4일에 이어 5일 경찰 특공대가 바로 그 용산참사에서 사용한 진압용 컨테이너가 옥상으로 내려졌습니다. 그 컨테이너 안에서 첨단 무기로 무장한 수십 명의 특공대가 튀어나오더니 공장 옥상을 뛰어다니며 조합원들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방패로 사정없이 찍어댔습니다. 마치 살인청부업자 같이 작업복.. 더보기
쌍용차 굴욕적인 협상 ‘경찰의 강온 압박 작전’이 주효했다? 벼랑 끝에 몰아넣고 굴욕을 강요한 야만적인 협상 극한 대치로 치닫던 쌍용차 사태가 6일 협상을 통해 타결되면서 ‘강제 진압을 자제하고 평화적 해결’을 이끈 경찰의 역할을 언론이 부각시키고 있다. 경찰은 이미 물과 음식물을 차단 시켜 궁지에 몰아넣고 ‘얼마나 견디는지 보자’며 사정없이 밀어 붙였다. 최소한의 인권조차 사라진 2009년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돌변하고 말았다. 거기에다 전기마저 차단 시켜 암흑천지로 만들어 버렸다. 마지막 거점인 도장2공장을 완전 포위하고 시간을 끌며 온갖 압박을 병행하는 ‘강온 전략’으로 노조를 협상 자리로 오도록 굴복을 강요했다. 경찰의 본격적인 압박 작전은 사태 해결의 돌파구로 기대를 모은 두 번째 노사협상이 결렬되면서 시작됐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전면.. 더보기
쌍용차 ‘진압부대 사령관’은 김경한 법무장관? 김경한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5일 오후 3시35분께 경찰의 진압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을 방문해 경찰 간부들과 악수하고 있다. 김 장관은 법무부 공공형사과장과 대변인, 수원지검 간부들과 함께 10여분 동안 머물며 현장을 둘러보고 경찰 진압 책임자들로부터 작전 상황 보고를 받았다. 김 장관은 “법질서 확립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현장을 확인하고 고생하는 전ㆍ의경들을 위로하러 왔다”고 현장 방문 이유를 밝혔다. 이어 “노조원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처벌 수위가 결정될 것이다. 한시바삐 불법 농성을 풀고 나왔으면 한다”고 말해 자신의 업무와 무관한 파업 노동자들에게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 경찰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진압 이틀째인 5일 오후 평택 공장을 방문한 김경한 법무.. 더보기
쌍용차 공장은 ‘화려한 휴가’가 시작된 학살의 현장 제2의 광주학살 ‘화려한 휴가’를 멈추라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 생각조차 떠 올리기 싫은 1980년 광주학살의 ‘화려한 휴가’가 2009년 8월 대한민국 경찰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옥쇄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그냥 진압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특수부대가 무차별 집단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테러 진압과 국가 주요 시설 경비 및 요인 경호가 주 임무인 경찰특공대는 노동자들을 방패와 쇠뭉치로 내려찍으며 사정없이 발로 짓밟고 있다. 이것이 경찰의 임무가 맞는지 아무리 눈 닦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1월 20일 서울 용산에서 세입자들을 무참히 죽이고도 정신 차리기는 커녕 아직 그 짓을 되풀이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란 게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살 수 없다. 평택은 2006년 5월 4일 평택 대추리에 경찰 1..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