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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친척 대공과 형사의 제안 서른 초반 개인적인 사정으로 활동을 접고 생업에 종사할 시기였다. 어쩌다 보니 실내건축으로 눈을 돌렸다. 돈을 받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술집 공사가 수입이 짭짤해 괜찮다. 나이트클럽 같은 공사 한 건 하면 허리 좌~~악 펴던 어두운 시절이었다. 밑천이 짧은데다 자금 회수가 안 돼 머리를 늘 싸매고 있었다. 당시 지금은 없어진 대공과에 근무하던 고종 자형이 어느 노동단체를 맡고 있으면서 내가 아는 사람들 이름을 대면서 ‘그 놈들 정보가 필요한데 아는 거 없느냐’기에 ‘난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어 안 본지 좀 된다’고 하자 ‘내가 성서에서 공장하는 사장들을 좀 아는데....’라며 미끼를 던지는 게 아닌가. ‘자형, 모를 뿐만 아니라 알고 있다고 해도 내 입으로는 말 못한다’며 잘랐다. 솔직히 말해 2~3초 사.. 더보기
박 형, 신세 좀 집시다. ‘박 형, 잘 지내셨습니까? 신세 좀 집시다.’ ‘윤 상무님,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현장에 자리 하나 만들어 주소.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고.’ 노가다로 밥벌이 할 때 만난 인연이다. 그에게는 난 아직도 상무다. 사장의 먼 친척 동생인데도 사촌 동생으로 알고 있다. 자기보다 두 살 많다고 ‘하대하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업무상 만난 사람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 결벽증 때문인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박 소장, 사석에서는 박 형’으로 불렀다. 우리 집 옆에 살아 자주 그의 차를 타고 현장에 가곤 했다. 신세 졌다고 기름 값 챙겨 주면 극구 사양하다 ‘영수증 처리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받았던 노가다 판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어쩌다 노가다판에 들어와 늦게 공부해 .. 더보기
고마운 동지들에게 정리를 하다 병상 일기를 발견했습니다. 급성 간염으로 경북대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쓴 것인데 허물투성이 인간을 도와준 동지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당시 황달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 간 이식을 해야 될지 모를 상태까지 갔는데 운 좋게 빨리 회복이 되었습니다. 밥벌이를 핑계로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이런 귀한 사랑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지들의 빚을 갚는 건 좌파 정당의 활동가로서 원칙을 지키는 싸움에 계산기 두드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 믿습니다. 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성을 보내주신 동지, 대구까지 병문안도 오고 봉투까지 주고 가신 변동승 동지의 얼굴이 지금도 선합니다. 교회개혁 운동을 하다 알게 된 강원도 태백의 조윤성 님은 페이스북을 통해 제 소식을 듣고 ‘고기 값이라도 보낸다’.. 더보기
국립사범대 졸업한 두 후배 삼성에 들어간 후배 국립사범대를 졸업한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가 있다. 둘 다 관악골에서 공부했는데 6년~7년 후배다. 6년 후배는 화학교육과를 다녔다. 자취방에는 늘 비표를 해 놓을 정도로 조직 활동을 치열하게 했다. 책꽂이에 있는 2천 여권 정도 되는 책은 장식용이 아니라 전부 손때가 묻어 읽은 흔적이 역력했다.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다는 자극을 준 내게는 정말 고마운 동지이기도 하다. 대학 4학년이 ‘운동권 사투리 쓰면 안 된다’고 할 정도였으니 내공이 대단했다. 전두환 정권이 과외금지령을 내렸을 때라 눈감고 비밀과외를 하면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습에 지장있다’며 피할 정도로 철저했다. 어쩌다 보니 대학원에 가게 되었다. 대학원 가서도 경제학과, 사회학과 원생들과 .. 더보기
윤희용 입니다. 누님, 저 아시겠어요? 고등학교 때 같은 교회 다녔던 5년 선배인 누님이 있습니다. 1977년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친구 따라 교회 갔다가 만난 인연이죠. 몇 년 전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가 경북도청에 어렵게 입사해 근무 중이라 기억을 더듬어 작년에 연락이 닿아 가끔 안부를 전하곤 합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쉰 줄의 늙다리로 하여금 바로 추억여행을 떠나게 했습니다. 노래를 잘 해 성가대도 하고 합창단 활동을 해 목소리가 맑고 고운 건 여전하더군요. ‘어떻게 사느냐’고 묻기에 “저 진보신당에 있습니다. 잘 나가던 노심조가 떠난 곳을 지키고 있습니다”고 했더니 ‘그 때 고집이 오래도 간다’기에 한 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도청 공무원노조 부본부장도 지냈다고 하니 말이 잘 통하더군요. 예수쟁이라 착실히 신앙생활 하면서 하늘나라만 .. 더보기
아까운 사람들(2)― 삼성에 있는 후배들 삼성이 돈으로 찍은 아까운 후배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거리에는 최루탄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청년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변혁을 갈망하는 많은 청년학생들 치열하게 싸웠다. 그 무렵 당구장에 붙어사는 후배들을 보고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며 질책을 한 친구가 있었다. 나 보다 6년 후배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훨씬 앞서 있었다. 좀 안답시고 교만하지도 않았다. 무식한 선배가 ‘어떤 책을 봐야 하느냐’고 물으면 바로 책을 보여 주며 권하기도 했다. 남들과 달리 이 후배는 ‘문건에 매달리지 말고 원론에 충실하라’는 자극을 준 고마운 은인이다. 덕분에 나는 ‘무식한 저 선배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 더보기
아까운 사람들(1)―동생을 생각하면서 ‘저 사람 정말 아깝다’는 말을 간혹 듣습니다. 제 주위에도 아까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보다 3살 적은 63년생인 남동생이 대학을 갈 때 갑자기 예비고사 반영률이 높아졌습니다. 자기가 예상한 것 보다 점수가 무려 4~50점 차이 나는데다, 재수를 할 사정이 안 되어 진로를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립사대를 가서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졸지에 운명이 바뀌게 되었으니 얼마나 허탈했을까를 자식을 키우면서 새삼 느낍니다. 어쩔 수 없이 수첩공주가 자리를 꿰차고 있는 대학의 건축공학과로 진학했습니다. 교사의 꿈을 버리지 못해 2학년 때 부터 교직과목 이수를 하며, 야학도 하는 등 열심히 살았습니다. 둔한 저와는 달리 기예에 재주가 뛰어나 풍물도 금방 배워 상쇠도 하고, ‘.. 더보기
국민휴식처로 자리 잡은 찜질방 언제부터인지 찜질방이 우리 생활 근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온돌이 주거 문화인 점을 감안해 만든 것 중 이 정도 대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잘못 가면 우락부락한 만화가들이 설쳐 분위기가 삭막하기 그지없지만 주택가는 대부분 가족들이 옵니다. 휴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 사정을 감안하면 가족이 집을 벗어나 같이 수다도 떨면서 휴식을 취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아줌마들끼리 와서 챙겨 온 것을 나누어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물론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서민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면 이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봅니다. 밤 10시가 넘으면 미성년자들은 보호자 없이는 머무를 수 없지만 잘 지켜지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사람이 많이 섞여 .. 더보기
아직도 눈물 흘리는 쉰 줄의 늙다리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은 중년의 늙다리 저는 눈물이 많다는 말을 더러 듣습니다. 사람이 슬픈 걸 보고 슬퍼 할 줄 안다는 것은 복이지요. 남의 아픔을 보고도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을 보고 ‘피눈물도 없다’고 하는데 다행히 제게는 눈물이 있으니 하느님이 귀한 선물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13일 마창대교에서 어린 아들과 70미터 아래 바닥으로 뛰어든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몇 일 동안 가슴이 먹먹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겠더군요. 우리 현실이 이렇게 되었는지 원망도 많이 했고요. ▲ 2009년 ‘삽질 대신 일 자리를, 언론악법 철폐’ 전국 자전거 일주를 하면서 인천에서 계양산골프장 반대 싸움을 하는 분들과 만난 자리. ‘환경파괴 현장’을 다니느라 고생한다고 반갑게 맞아 주신 분들. 남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 더보기
캐나다 토론토에서 날아 온 설교 한 편 캐나다 토론토 한인교회 목사가 보낸 설교 난데없이 페이스북에서 친구 녀석이 나를 찜했다는 이메일이 왔다. 하도 목사 티를 내 “난 너희 교회 교인이 아니다. 설교는 교회가서 하라”고 한 방 날렸더니 한 동안 연락이 끊겼다. 캐나다 간지 15년 가까이 되는데 가끔 사업 차 올 때 마다 엄청난 정서적인 차이를 느낀다. 유학원을 하는데 굳이 ‘한국문화원’이라고 하고, 사업 차 오면서 ‘선교활동으로 온다’고 하니 뭔가를 감추는 것 같아 싫다. ‘타지에서 먹고 살려니 보통이 아니라’는 진솔한 말을 듣고 싶은데..... 국내에 사는 사람도 오래 동안 만나지 않으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물며 외국인이 된 사람과 괴리감이 생기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난 친구 녀석에게 ‘당연하다는 걸 인정하라’고 하고 친구는 목..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