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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박 형, 신세 좀 집시다.

‘박 형, 잘 지내셨습니까? 신세 좀 집시다.’

‘윤 상무님,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현장에 자리 하나 만들어 주소.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고.’

 

노가다로 밥벌이 할 때 만난 인연이다. 그에게는 난 아직도 상무다. 사장의 먼 친척 동생인데도 사촌 동생으로 알고 있다. 자기보다 두 살 많다고 ‘하대하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업무상 만난 사람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 결벽증 때문인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박 소장, 사석에서는 박 형’으로 불렀다.

 

우리 집 옆에 살아 자주 그의 차를 타고 현장에 가곤 했다. 신세 졌다고 기름 값 챙겨 주면 극구 사양하다 ‘영수증 처리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받았던 노가다 판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어쩌다 노가다판에 들어와 늦게 공부해 건축기사 자격증을 딴 전형적인 노력형인 그의 집념과 끈기가 부러웠다. 건축과 출신이 아니라 고전을 했으나 특유의 성실함과 공정별로 사람을 잘 챙겨 공기에 차질을 준 적이 한 번도 없는 유능한 사람이기도 하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면서 남들보다 술도 자주 마시곤 했다. 한 동안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신세 좀 지자’는 말을 던졌으니 그도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정확한 현장 위치도 모른 채 숙소가 있다는 천안 인근 지역으로 무작정 짐을 챙겨 갔다. ‘밤에는 전화가 올 텐데 왜 안 오나’하며 연락을 기다리다 잠에 들었다. 월요일 새벽에 잠을 깼는데 연락 두절이니 ‘이 엄동설한에 객지에서 미아’ 되는 건 아닌 가 아닌 걱정이 앞선다.

 

도착해 부탁한 물품을 사느라 지갑이 비어 있어 더 걱정인데 추위는 보통이 아니다. 10시 무렵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고 삥을 뜯었다. 헛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으니 기다리기고 했다. 담배 냄새가 베인 곳을 벗어나 인근에 피시방이 있어 시간 때우기 좋은 곳으로 숙소부터 옮겼다.

 

오후 2시 쯤 되니 그의 전화로 여자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의 아내인데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정신 차리자마자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하라고 한 모양이다. 의식을 잃긴 했는데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다행이라고 한다. 부서진 차야 고치면 되지만 사람이 성하다니 천만다행이다. 병원에 갔더니 사고를 당한 사람이 되려 ‘미안하다’고 할 정도로 정이 많은 사내를 보니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쉰다.

 

덧 글: 삥을 뜯겨준 고마운 이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