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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윤희용 입니다. 누님, 저 아시겠어요?


고등학교 때 같은 교회 다녔던 5년 선배인 누님이 있습니다. 1977년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친구 따라 교회 갔다가 만난 인연이죠. 몇 년 전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가 경북도청에 어렵게 입사해 근무 중이라 기억을 더듬어 작년에 연락이 닿아 가끔 안부를 전하곤 합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쉰 줄의 늙다리로 하여금 바로 추억여행을 떠나게 했습니다. 노래를 잘 해 성가대도 하고 합창단 활동을 해 목소리가 맑고 고운 건 여전하더군요.


‘어떻게 사느냐’고 묻기에 “저 진보신당에 있습니다. 잘 나가던 노심조가 떠난 곳을 지키고 있습니다”고 했더니 ‘그 때 고집이 오래도 간다’기에 한 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도청 공무원노조 부본부장도 지냈다고 하니 말이 잘 통하더군요. 예수쟁이라 착실히 신앙생활 하면서 하늘나라만 쳐다보고 사는 줄 알았는데 ‘국민의 공무원’이 되려고 고민하며 살아온 걸 이제야 알았으니..... ‘내가 사람 좀 볼 줄 안다’는 말 함부로 할 일이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느낍니다.

그 때의 인연이 일생을 갈 줄 모른다는 걸 나이 들어서라도 알게 되었으니 천만다행이죠.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을 다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다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기억이 나이가 드니 희미하게 납니다. 그 때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살면서 인생을 배운다’는 게 이런 경우를 말하는 가 봅니다. 교사란 직업이 별로 각광 받지 못하던 시절 산골로 발령 났다고 그만 두고, 먹고 살만하다고 결혼 후 직장 그만둔 친구들과 달리 계속 근무했습니다.

친구들은 남편에 경제력의 의존해야 하는데 공무원이라 연금이 보장되어 있으니 노년 걱정이 없어 처지가 바뀌어 버렸습니다. 자식들은 공기업에 근무하고 해 걱정은 안 해도 되니 부모로서는 다행이죠. 이런 맛에 세상을 사는지도 모르죠. 찾아보지도 못했는데 ‘놀러 안 오느냐’는 말을 들으니 더 미안하더군요. 든든한 선배를 만나 이번 설이 즐겁네요. 설 지나면 만나 막걸리라도 한 잔 해야겠습니다. 주(酒)님을 잘 영접하는지 확인도 해 볼 겸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