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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자전거 타는 약자들이 겪는 서러움

 

오늘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날씨가 제법 풀리긴 했지만 몸속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차갑기만 하다. 안에 입은 등산용 남방의 지퍼를 끝까지 올려도 바람이 차가워 외투 지퍼까지 올렸다. 어지간한 날씨일 경우 10여 분 정도 달리면 땀이 조금씩 나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삼 복 더위 보다 오히려 타기 낫다. 안전모에 부착한 귀마개를 내리고 달리니 차차 온기가 느껴진다. 자전거는 제일 갓 차선에서 차와 같은 방향으로 주행을 하도록 도로교통법에 명시되어 있다. 성당못 주변 회집 골목을 지날 무렵 규정대로 오른쪽 차선에서 달리다 직진을 하는데 난데없이 경음기 소리가 요란스레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반말 짓거리에 쌍소리를 사정없이 퍼부어 댄다. 욱하는 성질을 누르면서 “아저씨, 반말 하지 마세요. 사람 놀라도록 경음기 누르는 건 불법인줄 모르느냐?”며 아주 부드러운 말로 대꾸를 하면서 안전모와 마스크를 벗었다. 얼굴을 보더니 말이 조금 부드러워지는 것도 잠시, 역시 제 버릇 개 못 주는 인간이었다.


▲ 우리나라 대도시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려면 상해보험 두어 개는 가입해야 할 정도로 생명의 위험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자전거 타는 서러움을 톡톡히 맛보니 기분이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분명히 도로교통법 대로 주행을 했고, 뒤에 온 차가 안전거리 확보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졸지에 놀라 자전거 탄 채로 넘어지고 말았다. 차에 밭여서 넘어졌는지 놀라서 넘어졌는지 모르겠다. 휴대전화기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니 ‘법 잘 아는 당신 마음대로 하라’며 또 고함을 지른다. 운전대만 잡으면 쌍욕과 반말이 몸에 배인 사람 같다. 분명 뒤에 오는 사람이 안전거리 확보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자인 자전거를 향해 욕부터 퍼 붓는 전형적인 치사한 부류다. ‘괜찮은지, 주의하라’는 말은 아예 나올 생각조차 없어 보여 시간과 차 번호를 적었다. (차 배기량으로 사람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제일 작은 경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저런데 큰 차 몰면 어떨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반말에다 쌍욕까지 듣고 나니 기분이 영 엉망이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상대적인 약자에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는지 정말 화가 난다. 자기 길을 방해했다는 생각만 할 뿐 자신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가면 뺑소니란 사실조차 모르는지 씩씩 거리기다 그냥 가 버린다. 정말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인간이다. ‘아무 일 없는냐’는 말 한 마디만 해도 괜찮을 것을 동서남북 온갖 ‘쌍소리해대는 놈 상종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막상 듣고 나니 은근히 화가 났다. 관할이 성서경찰서라 성서 쪽에서 일부터 먼저 보려고 바로 달려갔다. 민원실에 들러 관할지 확인부터 하고 차 번호 조회를 하니 회색마티즈 경차가 맞다.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한다니 너무 서글프다. 약자를 보호 하기는 커녕 사정없이 짓밟으려는 이런 못 돼먹은 풍조가 언제 줄어들지 모르겠다. 남자인 내가 이런 모멸을 당하는데 젊은 여성들은 어떨지 생각해 보면 끔찍하기만 하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부터 마련하고, 위반할 경우 엄중처벌 하지 않는 한 이런 못된 짓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터질지 모른다. 자전가 탄다고 수모를 당하면서도 다시 페달을 밟는다. 욕이 배 뚫고 들어오는 게 아니기에.... 12월 10일 오전 8시 40분 무렵에 일어난 사건이다. 차 번호는 ‘대구 30머 1772’ 회색 마티즈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