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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어청수의 어중간한 사과를 받아들인 불교계

 

‘종교편향 시정하라’며 이명박 정권과 대립각을 세운 불교계가 어청수의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촛불 폭력진압과 공직자로서 종교편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어청수 파면’을 요구한 불교계였다. 한국 불교 역사상 처음으로 20여만명의 불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정도로 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국립지리원에서 발간한 지도에 작은 개척교회는 나와도 유명 사찰이 안 나올 정도였으니 그들이 분노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불교계가 강하게 나오자 이명박은 어청수 파면 대신 ‘가서 사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나의 파면은 15만 경찰의 사기 문제가 걸린 것’이라며 핏대를 세우던 어청수도 상전의 한 마디에 쏜 살같이 달려갔다. 사전에 연락도 없이 불교계 대표자 회의가 열리는 대구 동화사까지 단숨에 달려갔으니 똥줄이 빠지고도 남을 일이었던 모양이다.



어청수 딴에는 격식을 갖춘답시고 승용차 대신 승합차로 갔는데 동화사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여기 왜 왔느냐’는 흥분한 승려와 불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고 말았다. ‘15만 경찰의 사기’ 운운하며 ‘총무원장이라 해도 검문은 당연하다’고 하던 그 오만방자함은 반납하고 진관 조계종총무원장을 보자마자 ‘큰스님 저 왔습니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총무원장이 묵묵부답이자 공양간(식당)까지 따라가 매달렸으나 ‘스님들 공양 때는 불자들도 안 간다’는 신자들에 밀려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상전의 지시를 받았으니 상경 열차 시간까지 늦춰 진관 총무원장이 탄 칸으로 가서 억지 사과를 하려다 ‘이런 결례가 어디 있느냐’는 승려들의 저지에 다시 밀려나고 말았다. 한 마디로 어청수 ‘스타일 다 구긴 셈’이다. 정보과 형사 4~4년이면 관내 어지간한 절의 비리는 대충 알고, 알력 관계의 구도까지 파악하고 있다. 이런 것을 모르지 않는 어청수가 가만 있을리 만무하다. 경무관급 이상이 모이는 참모회의 때 ‘불교계 비리 내사’를 지시했다는 불교 신자인 경찰의 제보가 있을 정도였으니 어청수는 ‘두고 보자’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영남지역 범불교도대회는 예정대로 열렸으나 가장 큰 종단인 조계종의 총무원장이 빠져 조금 김빠진 행사가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어청수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권력이라 적당히 타협할 것’이란 어느 촛불 스님의 말처럼 그 때부터 분위기는 급격히 달라졌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없다’는 말처럼 문화재 관리ㆍ보수와 사찰 공금에 대한 회계 처리가 투명하지 않은 현실에서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큰 절의 주지와 재무담당 승려 몇 명은 충분히 엮어 넣을 수 있다. 교구본사 주지면 말사 주지의 인사권까지 장악하고 있으니 대단한 권력이고, 그 계보에 줄 서지 않으면 작은 암자의 자리조차 못 구할 정도로 승려들의 취업난(?)이 심각한 게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염불하고 수도하는 중 노릇은 간데없고 줄 서기에 바쁘다.


제동장치 없는 권력은 타락하기 마련이고, 돈이 있는 곳에 부패는 싹트는 게 종교라고 결코 예외는 아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과잉 충성하는 어청수로서는 경찰 정보망에 걸린 절 몇 개 손보는 거야 식은 죽 먹기다. 한국 종교 중 가장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고, 어음이나 수표가 아닌 현찰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불교 중 큰 종단인 조계종으로서는 권력과 계속 대립각을 세우는데 위험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진관 총무원장은 ‘악연도 인연’이라는 애매한 소리를 처음부터 던지면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여지를 남겨 놓았다. 정말 음흉하기 그지없는 권력 가진 땡중들의 한심한 짓거리다. 총무원을 장악한 주류와 동국대를 비롯한 학교와 산하 병원을 잡은 반대파의 갈등에 불을 지르는 건 경찰 정보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책 잡히지 않으려 타협을 한 셈이다.


총무원장을 찾아간 어청수는 ‘결례해서 죄송하다’는 입에 발린 소리 몇 마디하고, 총무원장은 ‘큰 일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타협을 하고 말았다. 이래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밑에서부터 끌어 오른 불자들의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를 겨우 포졸대장과 거래한 불교계는 신도들의 신임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측은지심’은 아무에게나 베푸는 게 아니고, 용서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란 것부터 승려는 알아야 한다. 불교의 자존심을 짓밟히고도 어정쩡한 타협을 한 조계종 총무원을 사부대중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5년 째 생명탁발순례를 하고,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오체투지에 나선 승려들이야 말로 ‘존경받는 스님’이지 나머지는 땡중이란 소리를 들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