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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앞산시립기도원에서 고집불통의 시동생이 형수에게 사랑하는 형수님에게 그 동안 잘 지내시고 요즘 건강은 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겨울도 지나고 정월 대보름도 지났네요. 다음 주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우수라 아무리 꽃샘추위가 오는 봄을 시샘한다 할지라도 밀려나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 같군요. 대구의 어머니산인 앞산을 뒤덮고 있는 어둠과 겨울 세력 역시 달비골의 봄소식에 도망가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건만 발악을 하고 있어 여러 사람들의 애을 태우고 있답니다. 이번 설에도 못 뵈었지만 ‘집안 재산 도둑질한 인간들과는 상종 못한다.’는 시동생의 똥고집 때문에 명절에 얼굴 못 본지 오래되었지요? 스물여섯 새댁이 어느 덧 오십대 중반이 되었으니 세월 빠르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이제 형수가 우리 집과 인연을 맺은.. 더보기
앞산 달비골에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 해린아,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고 참 좋구나. 오늘은 봄의 문턱이라는 입춘인데 애비가 있는 달비골은 마치 초봄같이 포근하고 이름 모를 새 소리가 종일 들린단다. 몇 일 전만 해도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뿐이었는데 반갑게도 새가 와서 지저귀기 시작했어. 이제 북풍한설 몰아치던 엄동설한의 추위도 모퉁이를 돌아 달아날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겠지. 겨우내 얼었던 대동강 물도 녹고 어딘가에서 잠자던 개구리도 깨어난다는 우수ㆍ경칩도 머지않았으니 지금까지 몰아쳤던 앞산의 겨울은 달비골의 봄소식에 밀려가지 않을 재간이 없지. 아무리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한다 할지라도 겨울은 곧 사라지고 마는 게 자연의 이치요 섭리임을 믿는다. 요즘은 고종 동생 하은이와 안 다투고 잘 지내고 있니? 어릴 때 네가 언니임에도 불구하고 맞고 울.. 더보기
앞산 달비골에서 2월 첫째 화요일에 보내는 편지 이제 하루하루 새 소리가 잦아들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봄의 문턱인 입춘이라 그런지 계절의 변화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생명의 존귀함과 신비로움을 느낀다는 게 이런 것인가 고백해 봅니다. 어제는 앞산꼭지들의 부지런한 일꾼인 하외숙 꼭지가 맛 있는 호박죽을 갖고 오셔서 잘 먹었습니다. 없어서 못 먹지 가리는 것 없는 제게 ‘호박죽 좋아 하느냐’고 물으시니 따뜻한 정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요. 농성장에 오시면 늘 뭔가를 치우면서 깨끗하게 정리정돈 하는 모습은, 넉넉하고 푸근함 만큼이나 부지런해 젊은이들의 귀감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찬바람 때문에 낮에도 천막을 닫고 전열기를 돌려야 할 때가 엊그제였는데 달비골의 봄소식은 앞산을 향해 달려오는 거대한 겨울 세력에게 준엄한 경.. 더보기
앞산 달비골에서 1월 마지막 날 보내는 편지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입춘이 얼마 남지 않았긴 하지만 비 온 뒤 기온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수시로 일기예보를 보고 사는 직업이라 익숙해져 있긴 하지만 달비골로 입산 한 후 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더군요. 몇 일 따뜻해 나무 위로 올라가서 매일 하던 건포마찰을 빼 먹었는데 기상 이변에 대비해 다시 시작했습니다. 먼저 내 몸이 받쳐줘야 무엇이던 할 수 있으니 말이죠. 목요일 밤 저를 찾는다는 전화가 왔다고 해 받았더니 신부로 있는 후배였습니다. 무슨 급한 일이기에 제 전화가 안 되면 누리편지로 해도 될 텐데 밤중에 했을까 의아하더군요. 지난 번 3주간 있다가 내려간 후 후배와 나눈 가슴 아픈 이야기를 누리방(블로그)에 올린 것을 누군가 보고 몇 군데 전화를 했나 봅니다. 제가 힘.. 더보기
앞산에서 정월 초 이튿날 보내는 편지 어제는 설이었다. 아무리 어렵다 하지만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제사를 지낼 텐데 또 빠지고 말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는 게 우리네 인간사이기에 한 쪽을 버리지 않을 수 없어 달비골 입산을 택했다. 이제 이골이 난 어른들께는 덜 미안하지만 자식에게는 고개를 들기 어렵다. ‘내리 사랑’이라고 했듯이 자식 앞에는 꼼짝 못하는 게 부모 된 자의 심정이요 현실인 것 같다. 숙모나 삼촌이 잘 챙겨 주기에 조금은 편하지만 그래도 편치 않다. ‘하늘의 해와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해린이라 이름 지은 우리 딸, 밝은 해가 떠오르면 어두운 밤은 멀리 달아나듯이 이웃에게 밝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기도를 늘 한다. 어릴 때부터 자기 것도 못 챙겨 고종 동생에게 빼앗기며 울기만 한 녀.. 더보기
앞산에서 설날 아침에 형님 두 분을 떠 올립니다. 사용ㆍ광용 형님, 두 분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되었군요. 그 동안 하늘나라에서 편히 잘 쉬고 계시는지요? 게을러터진 인간인지라 형님들 묘소에 성묘조차 제대로 못 하며 인간 구실 못하고 사는 동생을 나무라주십시오. 저는 이번 설에 제사도 같이 지내지 않고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입산을 했습니다. 전형적인 정경유착인 민자유치사업으로 대구의 심장부인 앞산을 파헤치려는 미치광이 짓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벌목 작업을 막기 위해 나무 위에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셈이지요. 여기를 ‘대구시립기도원’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 한겨레신문 사진부 김태형 기자가 취재 후 보도로 나간 사진이라.. 더보기
수용되어 있는 아이들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 가까이 ‘미감아’ 시설이 있다. 다른 고아원과 달리 부모 중 누가 한센병에 걸렸으나 감염되지 않은 아이들을 보살피는 곳이다. 우리 사회가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편견이 아직 많아 이미 병이 완치되었음에도 그들은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부모와 헤어져 이런 시설에서 지내야 하는 이산가족이 되고 만다. 엄밀히 말해 아동시설에서 보호하는 게 아니라 집단 수용되어 있다. 2차 대전 후 전쟁 고아가 많이 발생해 대규모 시설을 지어 수용을 했으나 일반 가정과 달리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에게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스스로 독립하기보다 의존적이 되는 등 문제를 발견한 유럽 국가들은 집단 수용에서 소규모 가정으로 아동복지 정책을 바꾸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집.. 더보기
충고가 충고다우려면....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면서도 상대방의 처지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마구 뱉어내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말을 한 당사자는 ‘걱정하기에 한 말’이라는데 듣는 사람이 기분이 상한다면 ‘걱정이 아닌 간섭이나 강요’가 된다. 그것도 우정이란 이름을 빌려서 하면 정말 기분 엿 같다. 이런 일방통행이 더 심해지는 것을 ‘언어폭력’이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너에 대해 이런 말을 하려는데 어떠냐’고 묻고 나서 자기 생각을 밝히는 것을 간섭이나 강요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를 우린 ‘충고나 조언’이라고 하며, 어지간하면 들으려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걱정해 잘 되라고 한 말이라 할지라도 자식의 의사와는 무시하고 그냥 퍼부어 댄다면 과연 사랑해서 하는.. 더보기
대쪽 같은 아버지의 삶에서 배우는 지혜 우리 아버지는 지나칠 정도로 경우 바르고 남에게 거짓말을 못하는 분이다. 예전에 쌀집 해서 돈 안 번 사람이 없는데 되박을 못 속이는 아버지의 대쪽 같은 품성 때문에 우리 집은 돈 벌이는 커녕 겨우 밥 먹고 살았다. 남의 일을 자기 일보다 더 잘 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결벽에 가까운 성격이다. 거기에다 어려운 형제나 조카들을 보면 가만있지 못하고 집에 있는 대로 퍼 주셨다. 집에 현찰이 바닥 날 정도로 손이 큰 분이었으니 어머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증조부에서 백부까지 삼대가 두 집 살림을 했고, 백부님은 사십 대 초반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귀찮은 ‘두 집 살림’ 치다꺼리를 마다 않고 하셨다고 집안 어른들로부터 들었다. 나 보다 다섯 살 위인 사촌 누님이 열아홉 어린 나이에 덜컹 애를 낳고 말.. 더보기
2차 룸싸롱 갈래? 좋은 기억이 있는 친구를 28년 만에 만났습니다. 서울에서 출장 온 친구도 온다기에 옛 추억을 떠 올릴 겸 갔습니다. 만나보니 세월의 흔적은 피해갈 수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학창시절을 떠 올리다 보니 우린 어느 덧 10대로 돌아가 추억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서로 모여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화투치기’에 골몰하던 이야기 등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에서 온 친구가 술이 과했는지 평소 안 쓰던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는 등 돌출 행동을 해 어리둥절했습니다. 술이 좀 들어가면 남자들의 ‘정치이야기’는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안주거리인데 술이 많이 들어간 상태에서 ‘희용이 너 왜 그거 하느냐’며 ‘속셈이 무엇이냐’고 묻더군요. 속내를 드러낼 사이가 아닌데 받은 뜻 밖의 질문이라 ‘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