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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앞산 달비골의 2010년 해맞이

 

앞산 달비골에도 2009년이 가고 2010년 새해가 왔습니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니 누가 막을 재주가 없지요. 오는 새해를 시샘이라도 하듯 강풍이 사정없이 불어대고 있습니다. 골 들머리라 특유의 골바람이 세차기만 합니다. 기온도 많이 떨어져 농성장 천막 안에 받아 놓은 물이 모두 꽁꽁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작년 이 맘 때도 추웠을 테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 추운 것 같습니다. 앞산을 지켜보겠다고 마지막 수단으로 설치한 나무 위 농성장이 오늘따라 더 앙상하게 보입니다.


매 달린 현수막이 떨어져 나갈 정도이니 바람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천막 안에서 들어도 파이프를 치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의 정성’이 잘려나간 것을 안타까워하는 신음소리 마냥 애간장을 태웁니다. 농성이란 좁은 공간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약자의 마지막 저항수단이지요. 더구나 한 겨울 골 초입에 설치한 18미터 가까이 되는 ‘나무 위 농성’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애절한 절규였습니다. 싸울 무기나 저항 수단이 달리 없는 작은 난장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지요.



‘한 겨울에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많은 위험을 안고 한 겨울인 2008년 12월 14일 ‘나무 위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서너 주가 지나자 세상은 작은 난장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앞산터널 공사는 대구의 심장부이자 허파를 도려내는 무식하기 그지없는 삽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울도 ‘국립공원인 북한산 관통터널 공사를 하겠다’고 잘 생긴 외모의 시장이 선포를 했습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삽질로 생색을 내려는 몰상식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서울도 다른 저항 수단이 없는지라 앞산 달비골처럼 ‘나무 위 농성’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인데다 국립공원이라 대구처럼 그냥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많아 저울질을 하겠지요. 어찌된 심판인지 부도난 건설회사 대표이사가 대통령이 되더니 전국 곳곳이 삽질로 판을 칩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처럼 ‘삽질로 흥한 자 삽질로 망한다’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가 봅니다. 삽질로 자신들의 무덤을 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정신 나간 무리들임에 분명합니다. ‘빨리하라’고 독촉을 하는지 건설회사는 밤낮없이 공사를 해댑니다.



이 추운 겨울에 겨우살이가 힘든 이웃들을 볼보기는 커녕 지방 선거에 낼 사진 한 장 때문에 빚내어 삽질을 해대는 김범일 시장의 꼴이 가히 가관입니다. 민간자본을 끌어 들여 하는 공사니 검은 돈이 오갈 것이고, ‘한 밑천 두둑이 챙겨두고 보자’는 속셈이지요. 삽질의 시절은 갔건만 ‘아, 옛날이여’라며 지나간 유행가에 목을 매고 있는 ‘영혼없는 무리’들이지요. ‘아닌 것을 맞다’고 우기는 미친놈들입니다. 미친 것들의 광기가 워낙 거세 앞산을 지키려는 귀하디귀한 정성이 밀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몇 대 때리고 주먹이 오갔다고 해서 싸움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남은 농성장 붙들고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별 짓을 다합니다.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임에 분명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광란의 삽질에 대한 저항을 멈출 수 없습니다. 지금 싸움을 멈춘다면 저들은 4대강을 갈아엎듯이 뒷산과 옆산을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을 지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지키는 것이기에 멈출 수 없습니다.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나무의 생명력’이라고 한 철학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2010년 새해에도 미친 삽질을 끝까지 지켜볼 것입니다. (사진: 하외숙, 2010년 첫날 달비골에서)


추 신: 용산참사로 세상을 떠난 분들의 유족과 협상을 해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진작 들어줄 것을 2009년 하루를 남겨 놓고 그것도 반쪽협상을 한 옹졸하기 그지없는 이명박 정권에게 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