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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함께하는 것은 소중한 치유 천하태평이던 나에게도 정신병이 찾아왔다. 10년 전 3월 코가 불편해 주치의사인 후배를 자주 찾아갔더니 “형님, 의사인 제가 보니 별 문제가 없는데 불편한 걸 호소하는 걸 보니 정신과를 한 번 찾아가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며 동기 의사를 소개해 주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한 의사는 ‘우울증 때문에 불면증이 온 것 같다. 경과를 좀 지켜보자.’며 말을 조심했다. 서너 번 가자 그제야 “외상 후 장애, 공황장애, 우울증이 겹쳐 불면증이 온 것 같다.”며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정도 갈 수 있다.”면서 ‘검사 결과는 스트레스 수치가 엄청나게 높은데 얼굴은 밝다’며 의아해 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니 잠을 자는 게 정말 고통스러웠다. ‘겹친 각종 사고와 개인사가 누적된 것 같다’는 게 주치의사의 소.. 더보기
사교육으로 살아가는 질녀의 고민 유난히 우리 형제를 잘 따른 질녀가 있습니다. 갓난 아이 때 남들이 안으면 울던 애가 제 품에만 오면 거짓말 같이 조용해 작은 고모님은 ‘그 놈 지 아재비는 알아 보네’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집안 잔치가 있을 때면 저 멀리서 ‘삼촌’ 하면서 달려오던 녀석이 이젠 30대 여성이 되어 저를 할배 대열에 올려 주고 말았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과외로 책값과 용돈을 벌어 대학을 다녔는데 큰 힘들이지 않고 돈벌이 하던 재미를 붙인 탓인지 다른 걸 할 기회를 놓쳤는지 모르나 지금도 사교육 시장에서 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잊지 않고 헌금하는 심정으로 곳곳에 후원을 하고 있어 ‘안 변해 다행’이라며 농을 던지면 그냥 씩 웃곤 합니다. 그런 질녀가 자신의 앞날과 관련해 ‘고민이 있다’며 연락이 왔더군요. ‘지.. 더보기
임성열 동지가 구속되었습니다. 사진 속의 남자 임성열이 토요일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토요일(6일)에 영장을 집행한 검찰과 경찰이 정말 치사합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는 그 적당히 하는 법이 없습니다. 지역 본부장을 하면 대충 하면서 생색을 내기도 하는데 그는 그렇지 않아 많은 사람이 걱정했는데..... 시립노인병원 문제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선 임성열이 대구시로서는 보기 싫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니 기선을 제압하려 찌른 것이죠. 임성열 동지 구속의 배후는 김범일 대구시장임에 분명합니다. 임성열 동지는 민주노동당 시절 달서구위원회에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수입도 그리 많지 않은 평범한 직장인이 먼저 술값 내려고 해 말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술 마시다 보면 사람이 안 보이면 먼저 가서 미안하다며 계.. 더보기
21살 아들의 초등학교 시절 기억 올해 21살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의 일입니다. ‘아버지, 누구는 너무 지저분해서 친구들이 모두 놀려요’라기에 ‘그럼 너도 그 친구를 같이 놀리느냐?’고 물었더니 녀석이 미안한 표정을 하더군요. “다른 사람들이 다 놀려도 넌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일 하러 다니느라 늦게 와 제대로 못 씻겨 줘서 그런 거 아니니? 앞으로는 집에 데려 와서 씻으라고 하고 같이 목욕도 가라”며 용돈을 줬더니 얼굴이 확 밝아지더군요. 1주 일 후 ‘아버지, 그 친구 집에 데려와서 씻기고요. 아버지가 준 돈으로 목욕도 같이 갔어요’라기에 ‘역시 우리 아들은 멋진 의리의 사나이’라며 크게 칭찬을 해 줬습니다. 어린 아이지만 명색이 사내랍시고 ‘의리의 싸나이’라 불러주니 기분이 우쭐했던 거죠. 깔끔을 뜨는 어미.. 더보기
꾸지람보다 칭찬으로 이끈 아버지 처남의 결혼문제를 해결한 자형 둘째 외숙부와 작은 아버지는 힘든 결정을 할 때 마다 아버지를 찾아오셨습니다. 백부님이 일찍 돌아가셔 아버지를 시어른처럼 모신 사촌 형수들도 그랬습니다. 모두 아버지가 ‘그건 안 된다’고 하면 고민하다가도 따르곤 했습니다. 외숙부는 동성동본인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 그렇게 만나 연애를 했으니 머리를 싸매다 자형인 아버지를 찾아온 거죠. 외가의 족보를 훑어 본 아버지는 ‘촌수가 너무 멀어 남’이라며 장인(외조부)을 찾아가 ‘결혼 시켜도 됩니다’며 설득을 하셨다고 합니다. 결혼 문제를 해결 해 준 자형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광산이 활성화 된 시절 실제로 석탄을 캐는 업체의 소장으로 오래 근무했으니 보통이 넘는 성격입니다. 당시 ‘광산에는 강아지도 돈 물고 다.. 더보기
엄마, 할아버지 뭐 해? 오늘 남원 초록배움터를 떠나 대구로 돌아왔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모(?)처로 이동해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사진에 있는 회덮밥을 시켜 맛 있게 먹는데 서너 살 되는 아이 둘이 엄마들과 들어와 옆자리에 앉기에 반가운 얼굴을 하며 손짓과 눈짓을 했죠. 그런데 한 녀석이 ‘엄마, 할아버지 뭐해’라는 게 아닙니까. 여러 번 들은 소리라 ‘할아버지 아니고 아저씨’라고 하면 아이 엄마가 너무 미안해 할 것 같아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웃었습니다. 조카들이 결혼한 지 오래되어 할아버지 소리 들은 지 10년 가까이 되니 익숙한 말이라 자연스레 대꾸도 합니다. 웃으면서 ‘할아버지가 먹는 거 맛 있네’라며 응수하니 녀석이 더 신나하더군요. 같이 온 녀석도 ‘엄마, 할아버지 뭐 먹는데’라니 영락없는 할배가 되는 순간이죠.. 더보기
어린 자식 앞에서 어미의 멱살을.... 정확히 13년 전 6월 초등학교 1학년 어린 자식 앞에서 어미의 멱살을 잡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핑계를 댄다 할지라도 정말 몹쓸 짓을 한 거죠. 이유야 어떻든 그 일은 입이 열 개라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사고로 입원 중 아이의 생일이라 가족이 놀러 갔습니다. 세 살 배기 딸은 몇 달 만에 보는 아비를 어색해 했지만 금방 서로 웃으며 즐거워했죠. 그래서 가족이겠죠. 딸은 어른들에게 맡기고 집으로 가는 길에 노래방에 아들 녀석도 같이 노래 부르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술을 한 잔 더 하는 자리에서 아내가 뭐라 하는데 말에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은데 그 순간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다음 날 전화를 해 ‘내가 잘못을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아무리 그래도 어린 .. 더보기
윤희용 입니다. 누님, 저 아시겠어요? 고등학교 때 같은 교회 다녔던 5년 선배인 누님이 있습니다. 1977년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친구 따라 교회 갔다가 만난 인연이죠. 몇 년 전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가 경북도청에 어렵게 입사해 근무 중이라 기억을 더듬어 작년에 연락이 닿아 가끔 안부를 전하곤 합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쉰 줄의 늙다리로 하여금 바로 추억여행을 떠나게 했습니다. 노래를 잘 해 성가대도 하고 합창단 활동을 해 목소리가 맑고 고운 건 여전하더군요. ‘어떻게 사느냐’고 묻기에 “저 진보신당에 있습니다. 잘 나가던 노심조가 떠난 곳을 지키고 있습니다”고 했더니 ‘그 때 고집이 오래도 간다’기에 한 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도청 공무원노조 부본부장도 지냈다고 하니 말이 잘 통하더군요. 예수쟁이라 착실히 신앙생활 하면서 하늘나라만 .. 더보기
올해 환갑인 형님에게 형님이 살아계시면 올해 환갑입니다. 아버지가 환갑일 때 제 나이 서른이었는데 ‘결혼 안하고 부모 애 먹인다’고 집안 어른들에게 꾸중 듣던 게 생각납니다. 그런데 유난히 저희 형제를 따른 정×이와 보×가 벌써 삼십대니 세월이 정말 빠르군요. 보×가 두 살일 때 서내동 작은 고모가 녀석이 너무 예뻐 안자마자 울어 서운해 하셨는데 투박한 제가 안으면 울음을 멈춰 ‘녀석들 그래도 핏줄은 알아본다.’며 고종 여동생들도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형님은 한 번도 보지도 못했던 우리 집 아이들이 벌써 그때 제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쩌다 동생들과 화해도 못한 채 서른여덟 젊디젊은 나이에 요단강 넘어간 형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벌써 쉰 줄이고 스물여섯 새댁이었던 형수가 벌써 쉰여덟의.. 더보기
삶의 고백 3- 낳은 정 보다 더 무서운 기른 정 ‘낳은 정 보다 기른 정이 더 무섭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가슴 아파 낳은 자식’이라고도 하죠. 허물투성이인 인간에게 이런 사랑을 깨닫게 해 준 자식이 있습니다. 이제 21살의 어엿한 청년인 아들입니다. 네 살 때 녀석을 만났습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고 목소리는 카랑카랑 한 게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인연이 시작 되려고 그랬겠지만 그럴 때 ‘자식 안 키워 본 사람은 모른다’는 말이 실감나는 것 같습니다. 전 남편과 사별하고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저와 결혼한 여성의 아들이 그 아이입니다. 요즘은 드물지 않아 입방아 찧는 사람이 적지만 제가 결혼할 무렵에는 ‘별난 결혼’이란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니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하자’고 했지만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 마다 가족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