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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삶의 고백 1 ― 축첩에 친일까지 한 우리 집안 매관매직에 3대에 걸쳐 축첩한 집안 우리 집안은 증조부ㆍ조부ㆍ백부까지 3대가 두 집 살림을 했습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일제 수탈에 협조까지 했습니다. 저 보다 8살 위인 종형은 여의도문제연구소 전신인 ‘민정당사회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젊음을 보냈습니다. 대구의 일부 동지들은 알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밝히는 건 처음입니다. ‘그런 인간이 무슨 진보정치 운운하느냐’고 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대학 가는 게 힘들던 시절 대학원까지 마치고 군사정권에 영혼을 팔았던 종형이 지금도 밉습니다. 잠시 역사의 시계 바늘을 돌려 봅시다. 첩살림 했다는 사연을 접해 본 40대 이상은 생각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나지요. 돈 있고 권력 있는 덜 떨어진 남정네들이 해대는 짓이지요. 증조부는 구한말 현풍현감(달성군.. 더보기
진보신당 대구시당 당원가족 수련회 사진―1 ▲ 도착해 짐을 내리는 당원과 가족들. 누가 뭐라 하지 않건만 필요한 곳에 쌓인다. 이런데 오면 가장 많이 땀 흘리는 김수청 위원장이 있다. 아이들은 신난 얼굴이다. 막내인 소담이의 얼굴이 환하다. ^^ 8월 6~7일 비슬산 자락인 현풍 자연휴양림에서 당원 가족 수련회가 있었다. 말이 수련회지 오랜만에 야외에 나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 꽉 짜여 진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면 재미가 없다. 일부가 안 되어 다른 방향으로 가는 재미도 솔솔 하기 마련이다.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란 말처럼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돌아가는 즐거움은 이런 곳이 아니면 맛을 볼 수 없다. 아이들이 먼저 밥을 먹도록 챙겨주는 당원들의 마음에서 ‘자식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보인다. 잠자리도 내 새끼 남의 자식 가리지 않고 신.. 더보기
국민휴식처로 자리 잡은 찜질방 언제부터인지 찜질방이 우리 생활 근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온돌이 주거 문화인 점을 감안해 만든 것 중 이 정도 대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잘못 가면 우락부락한 만화가들이 설쳐 분위기가 삭막하기 그지없지만 주택가는 대부분 가족들이 옵니다. 휴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 사정을 감안하면 가족이 집을 벗어나 같이 수다도 떨면서 휴식을 취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아줌마들끼리 와서 챙겨 온 것을 나누어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물론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서민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면 이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봅니다. 밤 10시가 넘으면 미성년자들은 보호자 없이는 머무를 수 없지만 잘 지켜지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사람이 많이 섞여 .. 더보기
앞산 상수리나무 위에서 사랑하는 조카에게 사랑하는 조카 태현아 잘 지내니? 아무리 꽃샘추위가 발악을 해도 곳곳에 다가온 봄소식 앞에 밀려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순리’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깨닫는구나. 자주 얼굴 보지는 못해도 명절에는 보곤 했는데 큰 애비가 너희들 못 본지 제법 되었네. 마냥 어리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네가 벌써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 하는데 사정이 있어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난 지금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 작년 말부터 그곳에 지내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이상 아름답고 귀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지만 그것은 더 아름답고 귀한 일이고. 난 흔히 말하는 농성을 하고 있어. 나.. 더보기
앞산 상수리나무 위에서 질녀들에게 보내는 편지 그 동안 잘 지냈니 보라ㆍ정민아? 명절에는 보곤 했던 너희들 얼굴 못 본지 제법 된 것 같구나. 내게는 너희들이 영원한 큰딸들인데 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구나. 오는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네. 원래계절대로라면 아직 찬바람이 불 때니 그리 원망하거나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말야. 초봄처럼 따뜻해 봄에 긴장이 풀렸는데 다시 추워지니 몸이 더욱 움츠러드는 것 같다. 비록 몸은 움츠러들더라도 우리들의 마음만은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 보자꾸나. 이제 모레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우수이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머지않은 것을 보니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에 분명한 것 같구나.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에워싸고 있던 어둠과 겨울 세력.. 더보기
앞산시립기도원에서 고집불통의 시동생이 형수에게 사랑하는 형수님에게 그 동안 잘 지내시고 요즘 건강은 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겨울도 지나고 정월 대보름도 지났네요. 다음 주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우수라 아무리 꽃샘추위가 오는 봄을 시샘한다 할지라도 밀려나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 같군요. 대구의 어머니산인 앞산을 뒤덮고 있는 어둠과 겨울 세력 역시 달비골의 봄소식에 도망가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건만 발악을 하고 있어 여러 사람들의 애을 태우고 있답니다. 이번 설에도 못 뵈었지만 ‘집안 재산 도둑질한 인간들과는 상종 못한다.’는 시동생의 똥고집 때문에 명절에 얼굴 못 본지 오래되었지요? 스물여섯 새댁이 어느 덧 오십대 중반이 되었으니 세월 빠르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이제 형수가 우리 집과 인연을 맺은.. 더보기
앞산 달비골에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 해린아,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고 참 좋구나. 오늘은 봄의 문턱이라는 입춘인데 애비가 있는 달비골은 마치 초봄같이 포근하고 이름 모를 새 소리가 종일 들린단다. 몇 일 전만 해도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뿐이었는데 반갑게도 새가 와서 지저귀기 시작했어. 이제 북풍한설 몰아치던 엄동설한의 추위도 모퉁이를 돌아 달아날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겠지. 겨우내 얼었던 대동강 물도 녹고 어딘가에서 잠자던 개구리도 깨어난다는 우수ㆍ경칩도 머지않았으니 지금까지 몰아쳤던 앞산의 겨울은 달비골의 봄소식에 밀려가지 않을 재간이 없지. 아무리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한다 할지라도 겨울은 곧 사라지고 마는 게 자연의 이치요 섭리임을 믿는다. 요즘은 고종 동생 하은이와 안 다투고 잘 지내고 있니? 어릴 때 네가 언니임에도 불구하고 맞고 울.. 더보기
앞산에서 정월 초 이튿날 보내는 편지 어제는 설이었다. 아무리 어렵다 하지만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제사를 지낼 텐데 또 빠지고 말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는 게 우리네 인간사이기에 한 쪽을 버리지 않을 수 없어 달비골 입산을 택했다. 이제 이골이 난 어른들께는 덜 미안하지만 자식에게는 고개를 들기 어렵다. ‘내리 사랑’이라고 했듯이 자식 앞에는 꼼짝 못하는 게 부모 된 자의 심정이요 현실인 것 같다. 숙모나 삼촌이 잘 챙겨 주기에 조금은 편하지만 그래도 편치 않다. ‘하늘의 해와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해린이라 이름 지은 우리 딸, 밝은 해가 떠오르면 어두운 밤은 멀리 달아나듯이 이웃에게 밝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기도를 늘 한다. 어릴 때부터 자기 것도 못 챙겨 고종 동생에게 빼앗기며 울기만 한 녀.. 더보기
앞산에서 설날 아침에 형님 두 분을 떠 올립니다. 사용ㆍ광용 형님, 두 분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되었군요. 그 동안 하늘나라에서 편히 잘 쉬고 계시는지요? 게을러터진 인간인지라 형님들 묘소에 성묘조차 제대로 못 하며 인간 구실 못하고 사는 동생을 나무라주십시오. 저는 이번 설에 제사도 같이 지내지 않고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입산을 했습니다. 전형적인 정경유착인 민자유치사업으로 대구의 심장부인 앞산을 파헤치려는 미치광이 짓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벌목 작업을 막기 위해 나무 위에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셈이지요. 여기를 ‘대구시립기도원’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 한겨레신문 사진부 김태형 기자가 취재 후 보도로 나간 사진이라.. 더보기
대쪽 같은 아버지의 삶에서 배우는 지혜 우리 아버지는 지나칠 정도로 경우 바르고 남에게 거짓말을 못하는 분이다. 예전에 쌀집 해서 돈 안 번 사람이 없는데 되박을 못 속이는 아버지의 대쪽 같은 품성 때문에 우리 집은 돈 벌이는 커녕 겨우 밥 먹고 살았다. 남의 일을 자기 일보다 더 잘 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결벽에 가까운 성격이다. 거기에다 어려운 형제나 조카들을 보면 가만있지 못하고 집에 있는 대로 퍼 주셨다. 집에 현찰이 바닥 날 정도로 손이 큰 분이었으니 어머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증조부에서 백부까지 삼대가 두 집 살림을 했고, 백부님은 사십 대 초반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귀찮은 ‘두 집 살림’ 치다꺼리를 마다 않고 하셨다고 집안 어른들로부터 들었다. 나 보다 다섯 살 위인 사촌 누님이 열아홉 어린 나이에 덜컹 애를 낳고 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