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경과 생태

언젠가는 반드시 이길 앞산꼭지들의 싸움

 

“언젠가는 반드시 이길 것을 압니다. 다만, 오래 걸린다는 게 힘들 뿐이지요.”


1월 20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 용산에서 강제 철거에 항의하며 농성 중인 시민들이 경찰특공대의 잔인한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에서 앞산터널 반대 농성을 하고 있을 때였다.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어 있는데다 그 날 따라 골바람이 강해 새벽 5시 전에 눈을 떴다. 인터넷을 통해 보니 “용산 철거민 강제 진압 임박”이라는 끔찍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 역시 철거를 당해 본지라 파업 보다는 ‘철거’라는 단어에 더욱 민감하다. 다 부서져 냄새가 진동하고 쥐가 들끓는 곳에 마지막까지 남아 ‘가족을 살려야 한다’며 피눈물을 삼켰을 아버지의 모습이 27년이 지난 지금도 떠오른다.



인터넷을 통해 본 철거 진압 장면은 끔찍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억울한 세입자들이 ‘우리 목소리 한 번 들어 달라’고 올라간 망루에서 사람이 죽어감에도 경찰은 구조가 아닌 진압을 강행했다. 인화 물질이 가득한 곳에 진압을 하면서도 소방차는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쇠파이프로 지붕을 뜯기에 바쁜 경찰특공대를 보면서 ‘저건 사람이 아니다’는 마음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불은 망루 전체를 태워버렸다. 우리가 지키려던 ‘앞산도 저렇게 파괴하겠다.’는 생각에 ‘형님, 조심하시라’고 걱정하던 어느 후배의 말이 뇌리를 스쳐갔다.


“언젠가는 반드시 이길 것을 압니다. 다만, 오래 걸린다는 게 힘들 뿐”이라는 어느 유족의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평택 쌍용차 노동자들이 ‘함께 살자’며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77일 간 옥쇄파업을 하다 협상을 하고 나왔다. 말이 ‘협상타결’이지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죽거나 항복해야 하는 처지에서 강요당한 굴욕적인 항복이었다. 승리에 도취한 이명박 정권은 불황을 핑계로 정리해고라는 칼날을 노동자들에게 들이 댈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은 쉽게 손들고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연대 파업이 없었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지만 가장 작은 노조가 77일을 버텼으니 다른 곳은 더 오래간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앞산터널 공사 중 가장 중요한 터널 굴착 공사가 지연되고 있지만 계속할 것이다. 남들은 ‘나무 위 농성’을 ‘무모한 싸움’이라고 했지만 작은 힘으로 100일 넘게 끌어왔다. 태영건설이라는 큰 건설회사에 맞서 벌목 작업을 100일이나 지연시킨 것이다. 더 큰 힘을 모았다면 벌목 작업이 얼마나 더 밀렸을지 모른다. 공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비골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밀면 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앞산에 얽힌 추억이 너무 많아 쉽사리 물러난다는 것은 내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 지금 밀리면 저들은 뒷산을 파괴할 것이고, 삼천리강산 곳곳을 갈아엎는 미친 짓을 해 댈 것이다.


밤낮없이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 어디선지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아침이면 농성장 천막 주위에 날아와 ‘같이 살아요’라는 절규가 귀를 때린다. 저 뭇 생명들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접는 것과 마찬가지다. 방학이라 아이들이 달비골 곳곳을 누빈다. 주말이면 수박 한 덩어리 들고 계곡에 발 담그고 쉴 곳을 찾는 가족들도 많다. 별을 보지 못하는 도심과는 달리 달비골로 고개만 돌리면 별이 반짝일 정도로 하늘이 맑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그냥 내어준다면 우린 영원히 패배자가 되고 만다.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길 것’이란 걸 알기에 달비골을 지킨다. 그래서 달비골의 밤이 더욱 좋은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