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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민중

옥쇄 파업한 노동자 가족이 겪은 악몽

 

77일간 얼굴 못 본 남편은 다시 경찰서로


“꼭 죽여야 끝나는가. 살고 싶다. 가족, 사랑해”


쌍용차 공장안 컨테이너 벽에 농성 조합원들이 써놓은 글귀입니다. 이 사진을 보고난 뒤부턴 이 글귀만 떠올리면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집니다. 내 남편, 우리 이웃의 남편들을 뜨거운 공장 속으로 토끼몰이 해놓고, 공중과 지상에서 도장공장 속에서 말려죽이고 때려죽이고 떨어뜨려 죽이려 한 국가권력과 자본의 잔인함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8월 4일에 이어 5일 경찰 특공대가 바로 그 용산참사에서 사용한 진압용 컨테이너가 옥상으로 내려졌습니다. 그 컨테이너 안에서 첨단 무기로 무장한 수십 명의 특공대가 튀어나오더니 공장 옥상을 뛰어다니며 조합원들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방패로 사정없이 찍어댔습니다.



마치 살인청부업자 같이 작업복 하나 달랑 걸친 조합원들을 말입니다. 많은 언론이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휘두른 그들이 대한민국 경찰인지 모두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은 용산에서 사람들이 죽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 족히 아파트 10층 높이는 되는 그 위험천만한 옥상을 조합원들이 뛰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녹슨 사다리에는 칸마다 한 명씩 매달리며 다급히 도망을 갑니다. 그러다 두 명은 결국 옥상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습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1년도 아니고 겨우 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똑같은 진압작전으로 600여명의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살아남아야지, 꼭 살아남아야지’


그날 우리 남편은 바로 옆에서 가스통이 터지는 바람에 발목이 날아갈 뻔했다는 아찔한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지옥이다 지옥, 생지옥이다! 살아남아야지, 꼭 살아남아야지.” 문자메시지는 그렇게 끝납니다.


우리 남편들은 그냥 싸우고 있는 게 아니고, 죽느냐 살아남느냐가 갈린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인터뷰한 내용을 인터넷에서 들었습니다. “경찰력의 침탈에 맞서, 죽지 않으려고 싸워야 하는 이 상황이 몸서리 쳐지도록 두렵습니다.”고 했습니다. 단전으로 에어컨이며 선풍기가 돌아가지 않는 철구조물인 도장공장은 몹시 덥다고 했습니다. 낮에는 10시간 가까이 하늘에선 최루액이, 공중으론 새총 공격이, 밤에는 헬리콥터 소리와 사측의 선무방송.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몰아치는 경찰과 사측의 공격으로 2시간 이상 잠도 못 자고, 기껏 만들어놓은 주먹밥은 최루액이 섞여 못 먹게 되거나 헬리콥터 바람에 통째로 쏟아지는 일도 있었다합니다.


정말이지, 600여명이란 집단에 대해 단수ㆍ단전ㆍ음식물 반입 금지, 소화전 단수, 의료진 출입금지 등으로 철저하게 생명권을 짓밟아도 꿈쩍하지 않는 당국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러 달려왔습니다. 이름도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매일 찾아와 주었습니다. 7월까지 327명 검거, 132명 불구속, 9명 구속이라는 피해도 입었습니다. 그런데 더 무섭고 힘들었던 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온갖 방법으로 힘을 써도 달라지는 상황이 전혀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끝까지 귀를 닫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목숨을 가볍게 취급하는 정부, 경찰, 회사에 절망했습니다.


도대체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해결할 수 있을지 암담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더뎠습니다. 입안에서는 쓴맛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 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4살 된 아이를 생각해서 밥상머리에 앉으면, 밥이 넘어갔습니다. 정말 나는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에 푹신한 이불 위에 누우면, 또 남편들 생각에 죄책감이 들며 뒤척였습니다. 이 한여름에도 오한이 들어 긴팔 셔츠에 이불을 어깨까지 뒤집어 써야 잠이 들었습니다.


남편을 만나면 힘껏 껴안아 주려고 했는데.....


지난주부터는 막연한 기대에 매일 남편 갈아입을 옷이랑 물 한 병을 들고 다녔습니다. 오늘이면 볼까, 내일이면 볼까. 만나면 힘껏 껴안아주며 물을 실컷 먹이려고 했는데, 7일 평택 경찰서로 들어가는 남편을 간발의 차로 놓쳐서 보질 못했습니다. 서러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 투쟁이 승리인지 패배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남편이 쌍용차를 다니게 되던, 정리해고 돼서 협력업체에 근무하게 되던, 아예 회사에서 잘리게 되던지... 쌍용자동차에 대한 애정은 깊지만, 이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진과 관리자들과는 한 공간에 있을 수 없습니다.


▲ 쌍용자동차 노사가 정리해고 합의안에 서명한 6일 저녁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평택공장 승리광장에서 한상균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 지부장(맨 앞 왼쪽)이 파업농성에 참가했던 노조원들과 헤어지기에 앞서 포옹하며 울먹이고 있다. 77일 만에 농성을 푼 노조원들은 모두 경찰 버스에 태워져 경찰서로 연행됐다. (사진:노동과 세계)

 

경찰의 도움으로 회사를 점령한 사측 사람들은 농성 조합원 가족들을 만나면 죽일 듯이 덤벼들었습니다. 그네들 손에는 사람 길이의 막대 빗자루가 들려있었고,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네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그들을 비호한 국가권력에 모든 신뢰가 떨어졌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 가족을 보호해줄 수 없음을 뼈가 사무치도록 깨달았습니다. 우리 농성 조합원들의 가족들,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처가 깊습니다. 제일 큰일은, 사회에 대한 믿음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폭력과 비인도적 처사에 난자당하는 아빠들을 보면서 상상 조차할 수 없는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다 큰 아이가 밤마다 이불에 오줌을 싸고, 입안이 헐어 음식을 못 먹고, 자다가 비명을 지르며 깹니다. 남자 어른만 보면 무서워서 우는 초등학생도 있습니다. 누가 치유해 줄 수 있을까요. 무작위로 휘둘러진 이 폭력에 희생된 우리 아이와 남편, 그리고 저는 어떻게 위로받고 치유될 수 있을까요. 어제 조합원 가족 중 한 아내가 우리 아이에게 ‘뭐가 먹고 싶나’고 물었습니다. “컵라면이요!” 그 다음에 먹고 싶은 건 뭐냐 했더니 김밥이랍니다. 아빠 얼굴도 못 보면서 저와 함께 농성한 우리 아이 체질도 농성에 맞추어졌나 봅니다. 착잡합니다. 화마(火魔)가 지나간 자리에도 기적처럼 풀꽃이 피어나던데요. 우리들 가슴에도 다시 세상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 싹틀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파업 노동자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