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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앞산 달비골에서 겪은 주사(酒邪)파와 악연

 

제가 나무 위 농성을 하고 잠시 내려 온 일요일 저녁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3주 동안 고생했다고 저를 위로하기 위해 앞산꼭지들이 마련해 준 자리였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넘어서는 행동을 누가 하기에 순간 ‘저 친구 주사가 있구나’는 느낌이 들어 ‘피곤해서 자러 간다’며 핑계를 대고 일찍 나와 버렸습니다. 다음 날 들으니 술에 취해 횡설수설 하더니 ‘××× 나무 위 농성 하지 마라’고 했다며 헛소리를 사정없이 늘어놓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같이 자리를 한 다른 분에게 물어봤더니 화가 잔뜩 나 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무슨 이런 인간이 있느냐’ 싶은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달리 방법이 없어 기다렸습니다.



농성장 천막에서 ‘생명미사’가 있었던 날 ‘달빛공간’에서 강연을 하는데 주정을 부린 사람이 왔기에 모두 가고 난 뒤 ‘물어 볼 말이 있다’며 단 둘이 앉았습니다. ‘나무 위 농성을 말렸다는 무슨 소리냐?’고 묻자 ‘그 부분에 대해 나중에 사과를 했다’면서 말꼬리를 흐리기에 “나무 위 농성에 대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전적인 당사자의 결단이고 선택인데 당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느냐?”며 다그치자 얼굴이 굳어지기에 “사람 두들겨 패고 사과하면 뭣 하느냐? 때리지를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앞산꼭지들의 전 역량을 쏟아 엄동설한의 추위를 무릅쓰고 싸우는데 ‘싸우지 마라’고 한 사람이 달비골 농성장에 있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요?


‘저런 인간이 있느냐’는 생각에 분통이 터졌지만 억누르고 2주 몸조리 한 후 나무 위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고 ‘시어머니로부터 밥상 받는 심정’이었지만 현실의 역학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참고 견딜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말에 전교조에서 연대를 시작한 후 내려와 보니 또 술을 먹고 횡설수설해 꼴 보기 싫었지만 싸울 수는 없어 자리를 피하곤 했습니다. ‘나무 위 농성’을 할 동안 다른 힘든 것은 없었습니다. 일과표를 짜 놓은 대로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평소 못 본 책도 보면서 알차게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농성을 말리는 사람을 보는 것은 고역이었고, 그가 올려주는 밥을 먹는 게 여간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달비골에 와서 처음 봤고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모르나 깽판 치는 소리를 해대는 것을 보고 ‘저건 아니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바른 말 했다가는 판이 깨질 것 같아 저 답지 않게 비겁하게 입을 다물고 지냈습니다. 술 몇 잔 들어가면 전국구로 온갖 투쟁의 경력을 늘어놓기에 ‘정말 술버릇 더럽다’는 생각은 굳어져 갔습니다. 술 먹기 전과 먹고 나서 너무 달라 그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벌목이 시작되자 어디론가 간다고 하기에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다는 ‘평택 대추리의 무용담’이 떠올랐지만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아 털어 놓습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할 앞산꼭지들이 계실지 모르나 내가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 꺼내기 어렵더군요. ‘시어머니 밥상 받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여성들은 잘 아실 겁니다. 입이 뭐라서 없어서 못 먹는 제가 나이 쉰 줄에 팔자에도 없는 시어른의 상을 받는 심정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온갖 일 다 겪는다’는 어른들 말씀이 딱 맞더군요. 술이 들어갈 때 마다 주정하는 그를 웃으며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내공이 딸리고 수양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술 먹고 ×랄 하는 인간은 상종하지 마라’는 부모님들의 말씀이 귀에 딱지가 앉아 있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주사(酒邪) 부리는 사람을 보면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