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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앞산 달비골에서 1월 마지막 날 보내는 편지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입춘이 얼마 남지 않았긴 하지만 비 온 뒤 기온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수시로 일기예보를 보고 사는 직업이라 익숙해져 있긴 하지만 달비골로 입산 한 후 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더군요. 몇 일 따뜻해 나무 위로 올라가서 매일 하던 건포마찰을 빼 먹었는데 기상 이변에 대비해 다시 시작했습니다. 먼저 내 몸이 받쳐줘야 무엇이던 할 수 있으니 말이죠. 목요일 밤 저를 찾는다는 전화가 왔다고 해 받았더니 신부로 있는 후배였습니다. 무슨 급한 일이기에 제 전화가 안 되면 누리편지로 해도 될 텐데 밤중에 했을까 의아하더군요.


지난 번 3주간 있다가 내려간 후 후배와 나눈 가슴 아픈 이야기를 누리방(블로그)에 올린 것을 누군가 보고 몇 군데 전화를 했나 봅니다. 제가 힘들 때 술 취해 넋두리 들어 주느라 고생도 많이 해 늘 마음의 빚이 있는 고맙기 그지없는 아우랑 나눈 사연을 몇 자 적었을 뿐인데 어느 인간이 또 전화질을 해 댔는가 싶어 화도 났습니다. “마음 아픈 이야기를 적은 것인데 그게 무슨 문제냐”고 했더니 “형님이 가슴 아파 하는 거야 잘 알지만 제 입장이 곤란해 져 있으니 삭제 좀 해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회 수 70만이 넘는 평범한 누리꾼(네티즌)이 이런 유명세를 타는데 얼굴 좀 팔린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그렇지만 내가 가슴 아파 적은 글을 누군가 엿 보고 감시한다고 생각하니 어이없는 게 아니라 화가 나더군요. 설마 내 글을 천주교 관계자들이 볼까 싶어 대구교구가 아닌 다른 교구라고 일부 조작을(?)을 했어야 되는데 그러지 않은 제 불찰도 있죠.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럴까 싶은 생각과 함께 개인의 글을 색안경을 끼로 보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고자질 해대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그야말로 생사람 잡는 것이죠. 왜 드러내고 시원하게 말하지 않고 뒤통수를 치는 함량 미달의 짓을 신앙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하는지 그저 갑갑하기만 하더군요.


목사들도 이런 일로 시달리는 걸 봤는데 정말 목사 안 하길 잘 했다며 스스로를 위안해 봅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또 몇 일 머리 싸매는 병이 도져 아무 것도 하지 못 했습니다. 책을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냥 가슴앓이만 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감시의 눈이 많은 폭압이 존재하니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이래저래 눈치 보며 살아가는 게 결코 무리는 아니라 봅니다. 입산 해 추위와 자동차 소음에 시달리는 선배의 사정을 잘 알면서도 급하게 전화를 한 후배의 심정 또한 편하지 않았을 거라 봅니다.


찾아가보지도 못한 처지에 ‘지워 달라’는 말을 꺼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기도 하네요. 만일 이 고집불통이 “난 그렇게 못한다”고 했다면 후배 처지가 곤란했을 텐데 말이죠. 그러면서 ‘이해’를 영어로 understand라고 한 연유를 떠 올려봅니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게 그냥 눈높이를 맞추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아래에 선다’고 하니 ‘낮은 자세를 말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제 누리방 곳곳을 뒤져 다른 분의 전화로 연락한 후배의 안타깝기 그지없는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면서 ‘저 낮은 곳을 향하여’ 자신을 한 없이 낮추면서 살다 가신 어른들을 떠 올립니다. 수시로 새로운 생각과 성찰의 기회를 주는 달비골의 ‘대구시립기도원’이 고맙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