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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친척 대공과 형사의 제안

서른 초반 개인적인 사정으로 활동을 접고 생업에 종사할 시기였다. 어쩌다 보니 실내건축으로 눈을 돌렸다. 돈을 받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술집 공사가 수입이 짭짤해 괜찮다. 나이트클럽 같은 공사 한 건 하면 허리 좌~~악 펴던 어두운 시절이었다. 밑천이 짧은데다 자금 회수가 안 돼 머리를 늘 싸매고 있었다.

 

당시 지금은 없어진 대공과에 근무하던 고종 자형이 어느 노동단체를 맡고 있으면서 내가 아는 사람들 이름을 대면서 그 놈들 정보가 필요한데 아는 거 없느냐기에 난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어 안 본지 좀 된다고 하자 내가 성서에서 공장하는 사장들을 좀 아는데....’라며 미끼를 던지는 게 아닌가.

 

자형, 모를 뿐만 아니라 알고 있다고 해도 내 입으로는 말 못한다며 잘랐다. 솔직히 말해 2~3초 사이에 그렇게 많이 흔들려 본 적은 그 때가 처음이다. 허름한 공장 조금만 손보면 나이트클럽 공사 못지않게 돈벌이가 되는데 밑천 짧은 나로서는 그보다 좋은 기회가 없었다. 고종 누님까지 야야, 지나간 거라도 알려주면 안 되느냐?’고 했으나 모르기도 하지만 안다고 해도 내 입으로는 말 못한다며 단호하게 잘랐다. 더구나 그 사람은 좋은 사이가 아니었으니 안 흔들렸다면 거짓말이다.

 

그 일이 있은 몇 년 후 자형이 바로 안 된다고 하는 걸 보고 놀랐다. 그 정도면 누구라도 말하던데.....’라는 말을 고종형님과 술자리에서 들었다. 그 후 호주제 폐지 싸움을 시작으로 다시 거리로 나와 2003년 말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진보신당, 노동당까지 왔다. 그렇게 똥배짱 하나로 버티던 그 시절이 가끔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