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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사교육으로 살아가는 질녀의 고민

유난히 우리 형제를 잘 따른 질녀가 있습니다. 갓난 아이 때 남들이 안으면 울던 애가 제 품에만 오면 거짓말 같이 조용해 작은 고모님은 그 놈 지 아재비는 알아 보네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집안 잔치가 있을 때면 저 멀리서 삼촌하면서 달려오던 녀석이 이젠 30대 여성이 되어 저를 할배 대열에 올려 주고 말았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과외로 책값과 용돈을 벌어 대학을 다녔는데 큰 힘들이지 않고 돈벌이 하던 재미를 붙인 탓인지 다른 걸 할 기회를 놓쳤는지 모르나 지금도 사교육 시장에서 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잊지 않고 헌금하는 심정으로 곳곳에 후원을 하고 있어 안 변해 다행이라며 농을 던지면 그냥 씩 웃곤 합니다. 그런 질녀가 자신의 앞날과 관련해 고민이 있다며 연락이 왔더군요.

 

지금 이 일을 하면서 사회에 보람있는 걸 하고 싶다기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국립대에서 전자공학으로 학위를 받은 후배가 대학원 입학할 무렵 털어 놓은 고민을 질녀에게 말했습니다.

 

형님, 어뢰 관련 연구실에 가면 교수가 돈을 많이 줘 공부하기 좋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기에 우리가 가진 지식이나 기술로 사람을 죽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한 두 명이 아니라 수천 명을 죽일 수 무기를 만드는 건 반대한다는 아주 무책임만 말을 해 머리만 복잡하게 했던 적이 있다고.

 

삼성 같은 대기업에서 우아하게 돈벌이 하며 진보를 말하는 건 정말 웃긴다. ‘그건 자신의 모든 걸 바쳐 뛰는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 당이 어려울 때 내가 사교육 시장에서 밥벌이 하면서 진보정당에서 책임있는 일을 하려는 건 맞지 않다는 친구가 있는데 네가 정말 사회 변혁에 관심이 있다면 직업을 바꾸거나 지금보다 후원금을 더 많이 내는 게 (좋은 게 아니라) 더 좋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사교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진보정치 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정말 진보정치 현장에서 뛰고 싶다면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게 저의 소신이라 자식 같은 질녀에게 한 것이죠. 어디 우리 질녀뿐이겠습니까? 많은 젊은이들이 돈도 많이 벌고 적당히 생색도 내면서 좋은 관점도 갖고 살아가고 싶어 하지만 세상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그건 꿈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압니다. (사진: 최호선 페북)

 

헤어지면서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을 잘 알지? 이걸 뛰어 넘은 사람을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보지 못했다. 정 하고 싶다면 돈 벌이 줄이고 공부를 마친 후에 하는 걸 고민해 보라.”는 말까지 했으니 저는 정말 모진 아재비임에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