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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ㆍ경제

‘환율 문제없다’ 말만 되풀이 ‘진짜 문제’ 부른다

 

“‘9월 위기설’은 근거가 없다.” “금융시장의 쏠림 현상에 단호히 대처하겠다.” 기획재정부가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급히 연 2일 경제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김동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혼란은 이날도 진정되지 않았다. 나라 경제에 대한 종합평가를 반영하는 원화가치는 이날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금융시장의 전문가들은 위기설이 과장된 것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진짜 문제의 핵심은 정부의 정책 및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 부재라고 지적한다. 우리 경제는 무역 의존이 매우 높아 세계경제의 경기 후퇴 영향을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크게 받는다. 그리고 금융시장은 이에 대한 우려를 한발 앞서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 같은 상황을 맞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임원은 “현재 외환보유액은 7개월 정도는 막을 수 있는 수준”이라며 “그 정도면 괜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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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차관도 “정부는 시장을 면밀히 분석하고 전문가들과 논의한 결과 ‘대란설’은 과장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시장의 오해와 군중심리가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을 뿐이라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정부는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가 이달에 집중돼 있지만, 국내 채권투자의 기대수익률이 올라가고 있어 재투자 가능성이 높고, 환율 급등은 달러 강세 탓이 있지만 지나치게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정부의 이런 진단을 비웃는 듯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일 26.5원 뛴 데 이어, 2일에도 18원이나 뛰어올랐다. 국내외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우리나라의 주식·채권·통화(원)를 ‘매수’하는 데 갈수록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김동수 차관은 “정부의 대응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말라”고 말했지만, 시장은 이 대목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 경제팀이 시장 상황을 제대로 읽고, 이에 대처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전혀 못 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경제 상황 진단부터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후퇴 국면으로 돌아서는 상황에서 정부 경제팀은 출범 초부터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추구했다. 물가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환율 상승을 부추겼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달러가 강세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는데도 무려 200억달러 넘게 쏟아부어 가며 환율을 끌어내리려다가 이번에는 외환보유고만 축냈다. 당장의 문제 해결에만 급급한 오락가락 처방은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켰다.


정부 출범 6개월도 안 돼 정책 기조가 여러 번 바뀐 것도 불신을 키워왔다. 외국계 투자자들은 정부 정책이 언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경제정책 전반을 지휘하는 사령탑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그 결과 정책 곳곳에 빈틈이 보인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시장전략팀장은 “정부가 친기업, 대기업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감세정책 등에 매달리면서 금융시장에 직면한 불확실성에는 대처를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거품과 관련해서도, 금리 급등에 따라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시스템에 심각한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지만, 정부는 “문제없다”고 장담하며 고가주택 보유자들을 위한 정책 마련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경제 안정을 위해서는 사회 내부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일이 중요한데, 이 또한 정부가 나 몰라라 하고 있어 전망이 어둡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 집중에 뿌리를 두고, 정부의 외환 보유고 감소 등으로 힘을 얻은 ‘9월 위기설’은 과장된 것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 능력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한, 경기 침체의 가속화와 함께 위기설은 쉽게 수그러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시장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부동산의 거품이 서서히 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택건설 활성화를 대통령이 떠들어 건설사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관료 중 어느 누구도 문제점을 말하지 않고 밥만 축내고 있다. 김광수 경제연구소장의 “부동산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 급물살을 탈 것이고, 그와 함께 이명박 정권은 운명을 같이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지적이 그들의 귀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역시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환란 가능성’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김영삼은 ‘씰데없는 소리하지 마라’며 전혀 대비를 하지 않아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음을 알아야 한다. 그 때 처럼 우리 국민들이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겨레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