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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산골에서 느끼는 자연의 신비로움


 

단비가 온 뒤에 느끼는 자연의 신비로움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다른 곳은 폭우가 쏟아졌다는데 이 곳은 땅을 조금 적시다 말았다. 버림받은 경상공화국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축 쳐져 있던 농작물은 비를 맞자 싱싱하게 고개를 든다.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나무 역시 마찬가지로 푸르름을 더해만 한다. 비온 후에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아무리 인간이 노력을 기울여도 안 되는 하늘에서 내려주는 비를 맞아야만 되는 창조질서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역시 농사는 하늘의 도움 없이는 안 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마당에 플라스틱 상자에 비닐을 깔고 부엽토를 담아 대충 심어 놓은 상추나 고추 역시 빛깔이 다르다. 그래서 철학에서 ‘모든 이론은 회색빛이요,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나무의 생명력’이라고 하는가 보다. 비가 내렸으니 밤에 우는 개구리 소리는 더욱 요란하다. 자연의 품 안에 있으니 보고 느낄 수 있는 장관이다. 장마철이 오면 농작물 관리에 신경을 쓰라며 농약을 뿌리라고 방송에서 친절히 알려준다. 화학 비료와 농약에 의존해 온 농업이 한계에 왔음을 증명한다.


사정이 이러니 농사는 망해도 농약ㆍ종자 회사는 날로 번창한다. 농민들의 등골을 쥐어짜며 부를 축적해 간다. 농약을 치면 개구리 소리는 줄어든다. ‘병충해를 예방한다’며 독약을 뿌리는데 논이나 개천에서 살아가는 개구리나 두꺼비가 죽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개구리가 잡아먹는 벌레가 사라지니 먹이사슬이 파괴된다. 잘 자라라고 화학 비료도 뿌린다. 땅이 산성화 되어가는 것은 물론이다. 땅을 살려가면서 농사를 지어야 공생이 가능한데 수탈만 하니 견딜 재간이 없다.


자연의 순리를 지키는 게 인간이 살아남는 길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농약치지 않아도 되는 병충해에 강한 종자가 개발되었다고 떠든다. 사람의 몸에 좋은지 해로운지 안전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아니, 검증할 생각조차 없으니 국가가 맞는지 의문이다. 유전자 조작 작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람이야 죽던 말든지 오로지 자신의 주머니에 돈만 들어오면 된다. 지역마다 음식이 다른 것은 그 땅에서 자란 것을 먹고 오랜 세월 살아온 인류의 지혜가 쌓인 결과물이다.



얄팍한 인간의 꼼수로 자연의 순리를 거역한 결과가 곳곳에서 드러나건만 ‘난 예외’라고 애써 외면한다. 창조질서를 거역한 결과가 곳곳에서 나타나건만 ‘극복할 수 있다’는 착각은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특히 ‘하느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들먹이는 기독교인들의 망상은 더욱 심하다. 특별한 것은 보편적인 것 속에서 나타나건만 특별성에 빠진 집단이나 인간은 ‘예외없는 법칙이 없다’며 억지를 부린다. 길거리에 똥물이 늘려 있으면 아무리 조심해도 냄새가 배이기 마련 아닌가?


유난히 긴 동안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데 하안거는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어떤 화두를 만들지 모르겠다. 한치 앞을 알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반가운 얼굴들 보러 갔던 체육대회 때 유시민과 관련해 한 마디 하자 ‘넌 그 정도도 안 되지 않느냐’며 타박을 하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비판에는 성역이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한 자리 하지 못한 인간의 투정’으로 비꼬니 어이없다. 말 뒤집기를 수 없이 해도 감투만 쓰면 면죄부를 주는 이 세상이 참으로 아리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