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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길을 떠난 수경 스님…난 절 받을 자격이 없다.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칠십, 팔십 노인 분들로 부터 절을 받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


위의 글은 불교환경연대 대표로 불교계가 생명운동에 뛰어드는데 큰 역할을 한 수경 스님의 글 중 일부입니다. 돌연 휴대전화도 끊고 화계사 주지와 조계종 승적을 반납하고 사라지면서 남긴 말이 가슴에 팍 와 닿습니다. 죽어가는 새만금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문규현 신부님과 부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 행진을 하고, 이명박 정권의 막장 삽질에 오체투지로 저항한 이 시대의 실천하는 수도자이자 참 스승이기도 합니다.


▲ 서울 강남 봉은사 직영 외압 문제로 고생하는 명진 주지를 만나 위로하는 수경(가운데) 스님과, 생명탁발 순례를 한 도법(우측), 이들은 같은 도반(친구)이며 만나면 서로 싸우기도 할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다.


삼보일배를 하면서 무릎 연골을 다쳐 불편한데도 오체투지를 강행해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정도로 몸도 불편하다고 합니다. 오체투지는 자신을 가장 낮추는 불가의 수행 방법 중의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북한 묘향산까지 오체투지를 하려 했으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 이루지 못 했습니다. 생명이 아파하는 현장에 늘 먼저 달려가는 분이지만 그렇다고 결점이 없는 완벽한 인물은 결코 아닙니다.


불교 조계종 개혁 선봉에 서 ‘종단 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중 노릇 그만두겠다’며 폭력에 맞섰던 정의의 수도자입니다. 도반인 도법ㆍ명진은 만나면 서로 싸우느라 주위가 소란스럽다고 하더군요. ‘한반도를 상대로 목회를 했다’는 고 문익환 목사님이 고집이 세 별명이 ‘문 고집’이라고 들었습니다. 한신대에서 강의할 때 화가 나면 강의실 문을 쾅 닫고 나가기도 했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바로 잡는 솔직하기 그지없는 분이 가진 ‘옥의 티’라고 봅니다.


자신의 나이도 환갑이 넘었는데 7~80넘은 어른들로부터 절 받는 게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니 얼마나 진솔한 지 알 수 있습니다. 달리 남들로부터 존경받는 게 아니지요. 자신의 몸을 부처님께 바친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소식을 접하면서 충격을 받았는데 조계종 총무원에서 종단장으로 장례를 치르지 않자 총무원장을 향해 ‘사판 노릇 바로 하라’며 직격탄을 날릴 정도로 의협심이 강한 분입니다.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음식을 토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생명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한 수도자요 이 시대의 의인이라 인생의 대선배로 존경합니다. 마침 ‘6.15선언’ 10주년을 맞아 전주고백교회의 한상렬 목사님이 혼자 평양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죽어가는 뭇 생명들의 신음 소리에 괴로워하는 수도자,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광란의 질주를 외면하지 않고 돌파하기 위해 몸을 던진 목회자를 보고 우린 다시 희망이란 끈을 동여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사나 신부, 승려 나이는 고무줄 나이’라고 하죠. 대접받아야 한다는 착각이 뼈 속까지 배인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이지요. 환갑 줄의 수도자가 ‘절 받는 걸 감당할 수 없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겸손입니까? 혹시 현실에 안주할 까봐 훌훌 털어버리고 떠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기득권에도 연연하지 않는 그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인사받는 게 부담스럽다’며 떠나는 목사가 있다면 얼마나 존경을 받을까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지 모르겠습니다.


덧 글 : 캐나다로 이민간지 15년이 되는 목사인 친구와는 지금도 다툽니다. 편지가 목회서신이라 ‘목사 티 그만내고 설교는 너희 교회에서 하라’며 면박을 주면 삐져서 한 동안 연락도 안 하고 그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