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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종교편향에 항의하는 불자들에게 한 기독인이 용서를 빕니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유명 사찰을 지도에서 삭제하고, 온갖 종교편향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져 참다못한 불교계의 각 종단이 참여한 가운데 마침내 ‘범불교대회’를 열었습니다. 불교계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어청수 경찰청장 등 종교차별 공직자 즉각 파면 및 엄중 문책, 공직자의 종교차별을 금지하는 법과 제도의 추진, 시국 관련자에 대한 국민대화합 조처” 등 지극히 평범하고도 당연한 요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무런 말 한 마디 없습니다. 물 밑에서 서로 조율을 하면서 대화를 하지 않은 게 아닐 텐데, 자신이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라도 되는 양 착각한 이명박은 그 어느 것 하나도 들어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제가 이런 수모를 당했다면 쉽게 물러나지 않고 ‘단식기도회’를 하면서 끈질기게 투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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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상원사 주지 삼보스님이 8월 30일 오후 조계사 대웅전에서 할복을 시도하기 전 작성한 혈서. ‘이명박 정권은 불교탄압 중단하라’고 적혀있다. (사진: 한겨레신문)


그러기에 화가 머리 끝 까지 치면 불교도들의 심정을 충분히 공감 하고도 남습니다. 전국적으로 무려 ‘20여 만’에 가까운 불자들이 사상 처음으로 거리로 나오자 경찰은 병력을 보이지 않는 곳에 배치하고, 조계사 부근에는 수 많은 사복경찰들이 깔기도 했습니다. 어청수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을 지기는 커녕 각 사찰에 공문을 보내 주지 스님들을 회유하는 등 종교 사찰을 감행했으나 ‘종교편향’에 뿔난 불심을 잠재울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오만방자한 이명박 정부에게 투쟁 강도를 높여 각 사찰 별로 종교편향 정책에 대한 항의 법회를 했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교계는 범불교도 대회 봉행위원회를 ‘대책위원회’로 보강, 상설 기구체로 전환하는 등 정부의 종교 차별에 대한 항의 사태가 장기화하는 것에 대비키로 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범불교도 대회 봉행위원회의 대변인인 승원 스님은 1일 서울 견지동 조계종 총무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히고 “3일 불교계 대표자 회의를 열어 세부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범불교도 대회 다음날 대통령은 뉴라이트 관계자들을 초청해 만찬을 하는 등 개탄스러운 일만 거듭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불교계 요구를 끝내 외면한다면 이후 불행한 사태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릴 높여 주장했습니다. 또 이달 말이나 내달 초 대구ㆍ영남권을 필두로 부산지역, 전라ㆍ충청권 등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정부의 대책이 없으면 전국의 ‘모든 승려가 참여하는 승려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 항의를 지속할 것임을 재확인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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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종교가 말하는 것도 이 세상에 ‘절대 진리’는 없습니다. 성서의 제일 첫 편인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지금 페르시아만)에 포로로 잡혀가 오랜 세월 노예로 시달리며 신음할 때 ‘하느님이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귀한 존재’라는 집단 신앙 고백이 주 내용입니다. 지혜의 글(잠언)은 기록자인 솔로몬이 중년에 접어들어 젊은 시절의 잘못을 되돌아 본 반성이 대부분이죠. 신약성서는 순서와 달리 ‘바울서신’을 먼저 기록했고, 그 후 30여 년이 지나 예수 제자들의 이름을 빌려 누군가가 기록한 문서라는 게 신학자들이 연구한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보고 기록한 ‘묵시문학’이라고 합니다. 유배되어 있는 사람이 밖으로 편지를 보낼 때 검열 하는 것은 당연하니 우회적인 표현이 많이 있을 수 밖에 없죠. 이스라엘의 하느님인 ‘야훼’를 왜 우리 모두가 고백해야 하는지 저는 수시로 의문을 갖곤 합니다.


승려대회를 준비하는 스님들!

아무리 수도자라 하지만 화가 가득 났는데 그냥 묻어 둔다면 병나고 말 것이니 표출해 감정이라도 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 후 우리 자신들 되돌아보고 성찰하면서 ‘나의 잘못은 없는가’를 고민하는 게 수도자들의 참된 도리라 아닐까 싶군요. 신약성서를 가장 먼저 기록했고 많은 신학적 업적을 남긴 바오로는 작은 키에다 못 생긴 얼굴이라 열등감 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극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많은 공부를 했을 것이고, 뿐만 아니라 일평생 지병을 갖고 살아 바울서신에 보면 ‘하느님에 대한 원망’이 곳곳에 나옵니다. 그런 고난의 사람이었기에 사랑에 대해 많이 강조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 참는다’는 말 전에 ‘사랑은 불의와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며 그 순서를 제대로 가르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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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교회의 권력을 잡은 목사들과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은 분명 못된 것이요 불의’라고 저는 감히 규정을 하려 합니다. 불의를 묵인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게 참된 사랑이기에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미력하나마 ‘종교편향’에 맞서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편향에 맞서 투쟁하는 분들에게 기독교신자로서 감히 용서를 빕니다.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의 뜻을 실천하는 수도자도 사람이기에 당장은 풀리지 않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화가 풀리면 그 때 가서 용서해 주시면 됩니다. 다시 한 번 한국교회의 잘못과 타 종교를 무시하는 잘못된 신앙에 대해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悔改)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몸이 따라줘야 싸울 수 있으니 몸 상하지 않고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