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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주권운동

이제야 ‘김재철 사장 퇴진’ 외치는 MBC노동자들에게

 

22일 오전 9시 여의도 MBC 10층에 위치한 사장실 앞. 피켓을 든 MBC 노조 집행부 10여 명이 ‘연좌농성’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MBC노조는 김재철 MBC 사장이 자진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농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사장실 앞에 은박 스티로폼을 깔고 앉은 노조원들은 팔을 들어 올리며 힘차게 구호를 외쳤지만 왠지 뒷북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의 ‘방송진압작전’을 보고서야 나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명박 정권이 낙점한 방송장악 낙하산 요원인 김재철이 이미 그런 줄 ‘기자와 피디인 사람들이 몰랐다’면 이상한 것 아닌가? 낙하산 김재철이 출근 투쟁을 시도할 때 ‘우린 기자요 프로듀서인데 돌아가는 걸 모르는 줄 아느냐’고 외치던 그 목소리가 갑자기 기어들어가 의사하기만 했습니다. 어떤 싸움이라 할지라도 시작할 시기와 마무리할 시기가 있다는 것은 중학생도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문화방송노동조합이 어중간한 타협을 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공영방송 유린하는 청소부를 거부한다. 인사개입 없다더니 조인트로 협박했나. 청와대 조정 받는 관제사장 사퇴하라. 의혹은 여전하다 스스로 사퇴하라. MBC 사수하여 언론독립 지켜내자. 문화방송 사수! 투쟁!”


구호를 아무리 외쳐도 김재철은 꿈쩍하지 않습니다. 그럴 각오하고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낙하산 부대원을 자청한 자 아닌가요? 세상 돌아가는 것 누구보다 잘 아는 언론노동자들이 이런 실수를 했는지 의아하기만합니다. 김재철 낙하산 사장이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공영방송 MBC와 사장인 나와 MBC 구성원들을 매도하고 자존심을 짓밟은 처사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MBC 노조는 ‘보라! 이 치욕을!’이라는 제목으로 <신동아>의 보도 전문을 게시하며 김 사장을 압박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싸움임에 분명합니다. MBC 노조는 김 사장의 자진 사퇴와 함께 청와대의 해명과 진상조사를 요구했습니다. 이날 이근행 노조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김우룡의 폭탄발언으로 인해 정권의 대리인인 방송문화진흥회가 MBC를 장악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며 “김우룡은 그런 의미에서 내부 고발자”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김우룡은 내부 고발자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낙하산 사장이 출근을 시작한 뒤에 무슨 말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와서 아무리 “누가 엄기영을 몰아내고 김재철을 앉혔는지 검찰수사든 청문회든 국감이든 특검이든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근행 위원장은 “이에 대한 책임 추궁이 있을 때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실효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부터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MBC노조의 싸움은 감옥행을 피하지 않은 정공법이었습니다. 노조위원장을 지낸 최문순 의원이 사장에 지원할 정도의 분위기는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싸운 언론 노동자들이 정권과 싸워 쟁취한 결과물이지 그냥 굴러 떨어진 게 아닙니다. 낙하산 관제사장이 출근한 이제 와서 “김재철 사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아무리 강조해 본 들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더욱 반성해야 할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외면입니다.


언론노동조합은 어디나 할 것 없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 전에는 같은 직원으로 일 했던 식당을 비롯한 경비원 등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노동자들의 외주화ㆍ비정규화에 입을 다물었던 게 사실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편을 들어줄 노동자들을 외면한 결과가 지금 나타난다고 해고 과언이 아닙니다. 극소수를 제외한 방송작가들은 살인적인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기 업무 외에도 온갖 치다꺼리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지금이라도 언론노동자들이 살려면 ‘외주화’란 명목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내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잘 싸우라고 먹여 놓았더니 내 모가지 잘랐다’는 식당 아주머니들에게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고생하는 경비 아저씨들에게 ‘외면해서 미안하다’며 사죄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이 붙어 있다고 순간적인 달콤함에 넘어간 잘못부터 사과해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약자를 외면하는 순간 나도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비정규 노동자 해고 문제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적극 나선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남들과도 연대하는 마당에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함께 해야 살 길이 열립니다. 지금 편하자고 이웃을 외면하면 다음에 내가 외면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