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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삶의 고백 1 ― 축첩에 친일까지 한 우리 집안 매관매직에 3대에 걸쳐 축첩한 집안 우리 집안은 증조부ㆍ조부ㆍ백부까지 3대가 두 집 살림을 했습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일제 수탈에 협조까지 했습니다. 저 보다 8살 위인 종형은 여의도문제연구소 전신인 ‘민정당사회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젊음을 보냈습니다. 대구의 일부 동지들은 알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밝히는 건 처음입니다. ‘그런 인간이 무슨 진보정치 운운하느냐’고 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대학 가는 게 힘들던 시절 대학원까지 마치고 군사정권에 영혼을 팔았던 종형이 지금도 밉습니다. 잠시 역사의 시계 바늘을 돌려 봅시다. 첩살림 했다는 사연을 접해 본 40대 이상은 생각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나지요. 돈 있고 권력 있는 덜 떨어진 남정네들이 해대는 짓이지요. 증조부는 구한말 현풍현감(달성군.. 더보기
앞산에서 설날 아침에 형님 두 분을 떠 올립니다. 사용ㆍ광용 형님, 두 분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되었군요. 그 동안 하늘나라에서 편히 잘 쉬고 계시는지요? 게을러터진 인간인지라 형님들 묘소에 성묘조차 제대로 못 하며 인간 구실 못하고 사는 동생을 나무라주십시오. 저는 이번 설에 제사도 같이 지내지 않고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입산을 했습니다. 전형적인 정경유착인 민자유치사업으로 대구의 심장부인 앞산을 파헤치려는 미치광이 짓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벌목 작업을 막기 위해 나무 위에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셈이지요. 여기를 ‘대구시립기도원’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 한겨레신문 사진부 김태형 기자가 취재 후 보도로 나간 사진이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