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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안중근 의사에 100년 만에 참회한 천주교의 비겁한 역사 살인자로 제명한 과거 씻고 명동성당 추모미사 2010년 3월 26일 명동대성당에선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안중근(1879~1910)의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는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한국가톨릭의 최고 지도자가 명동대성당에서 교구 차원의 공식적인 안중근 의사 추모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100년 만에 처음이다. 이래 놓고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천주교를 향해 묻고 싶다. 사제와 교회의 권위가 얼마나 높기에 뒤틀린 역사를 잡는데 무려 100년이나 걸린단 말인가? ▲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10일 뤼순감옥 면회실에서 아우 정근ㆍ공근과 함께 면회 온 발렘 신부를 바라보며 유언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자료 사진) 안중근이 19살 때인 1897년 1월 안 의사와 가족, 친척들은 아버.. 더보기
친일인명 사전 국민보고 대회 날 한 친일파 후손의 고백 저희 증조부께서 구한말에 돈으로 현풍현감을 사려다 포산(현풍) 곽씨에게 밀려 논공면장을 지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증조부 때부터 방앗간을 했고 조부와 백부 때까지 이어졌으니 비록 골짝이이긴 하지만 살림살이는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하기야 3대가 2집 살림을 살았으니 입에 풀칠하기 힘들었다면 거짓말이지요. 얼마나 먹고 살만 했으면 벼슬을 돈으로 사려했겠습니까? 청소년 시절 걸핏하면 ‘호랑이 면장 할아버지’라며 증조부 이야기를 하기에 귀를 쫑긋했습니다. 할머니로부터 ‘돈 벌어 기생집 많이 들락거린 어른이다’는 말을 수 없이 들었습니다. ▲ ‘친일인명사전’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 2기생 예과 졸업식에서 우등상을 받고 부상으로 부의 황제 명의의 금시계를 하사 받았으며 대열 앞에서 생도 대표로 인사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