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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당기위원회 재심 결정문을 받고


 

화요일 중앙당 당기위원회 실무자로부터 ‘재심 결정문을 이메일로 보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징계 수위가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불가피했다’고 하더군요. 다만 “피제소인에 대한 성평등 교육을 사건을 처리하는데 함께 한 대구여성회에 일임한다.”는 내용이 있어 흡족하지는 않지만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에게 두 번이나 제소장을 쓴다는 것은 그리 흔하지도 않거니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제소를 하고 나서 온갖 뒷말에 시달려 견디기 어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멀쩡한 사람 죽이려 한다, 일 잘하는 사람 그냥 두지’라는 등의 말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저 역시 피하고 외면하고 싶었으나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2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왔습니다. 나머지 재정 처리와 관련해 제소한 내용은 제 두 눈으로 분명히 확인한 것이기에 조금의 거짓도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조직의 생명은 사람과 돈인데 둘 다를 함부로 취급한 사람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낄 수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자연을 지키겠다고 고생한 곳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을 당해 상처가 더 컸는지도 모릅니다.


조용히 풀려고 누가 봐도 믿을 수 있는 동지들과 함께 만나 부탁도 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습니다. 무려 2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저와 피해자는 피제소인으로 부터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듣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조직의 처분에 따르겠다. 그 동안 당직도 쉬고 자숙하겠다.”는 말만 했어도 재심은 커녕 제소도 하지 않았을 일을 그렇게 자존감이 없는지 아쉬울 따름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에 저렇게까지 하는지 저는 불쌍하더군요.


비록 미흡하지만 조직의 최종 징계 결과가 나왔으니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새로이 져야 할 짐이 있어 벗지 않을 수 없기도 하고요. 저로 인해 불편해 하셨을 동지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웃는 얼굴로 만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고가 발생했던 구당 시절 바로 제소를 하지 않고 미루어 일이 크게 불거진 것에 대해 죄송하고, 다시는 폭력 앞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같이 가슴앓이 한 여성동지들에게 드리려 합니다. 순간을 침묵한 것이 이렇게 오래도록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할 줄 몰랐던 미련함을 꾸짖어 주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많은 여성동지들이 남성 중심의 당 문화에 힘들어 하는 것은 예나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남성 중심의 문화를 타파하지 않는 한 정말 진보는 저 멀리 있는 남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이 행복하지 않은데 남성들이 행복할리 만무하건만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만 미워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사람까지 미워지려 하는 것은 제 수양의 부족이니 성찰의 기회로 삼도록 애 쓰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자들이 불편하거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힘들고 지쳐 있을 때 ‘선배 힘 내시라’며 격려해 주고, 힘들고 어려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히틀러 암살에 직접 개입한 디트리히 본훼퍼 목사와 같이 고백교회(지하교회) 구성원으로서 나찌집단에 끝까지 저항한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을 사족으로 붙입니다.


“나치는 맨 처음 공산당원들을 잡아들였다. 그러나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다음에 그들은 유태인들을 잡아 들였다. 그러나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그들은 노동조합을 탄압했다. 그러나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했다. 그 다음 그들은 가톨릭신자들에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나는 개신교도였기 때문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나에게 들이닥쳤다. 그때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