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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앞산에서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언제 겨울이 갔는지 모르겠는데 벌써 여름이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극심해져 가는 기상 이변으로 가뭄도 오래가고, 기온도 들쭉날쭉 해 하늘이 노하셨나 하는 걱정을 해 봅니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다소나마 위안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아버지 조카들 중에 농사짓는 사람이 없으니 걱정꺼리가 하나 줄어든 것 같아 자식 된 처지로 다행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부모님께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한 아들이 이 곳 달빛고운 마을 달비골에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푹푹 찌는 도심에 있다가 달비골로 오면 시원하니 생태 보존이 아주 잘 된 자연 휴식처입니다.



이제야 드리는 말씀이지만 지난 겨울 저는 출장이 아닌 이 곳 달비골에서 앞산터널 저지 ‘나무 위 농성’을 했습니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엄동설한에 18미터 높이의 상수리나무 위에서 보내면서 그 동안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한 겨울에 ‘무슨 생고생’이냐고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좋은 수행의 기회가 된 것 같으니 그리 손해만 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리기만한 해린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집안 며느리 중 가장 키가 큰 어머니의 접힌 허리를 생각하며 머리를 싸매기도 했습니다. 처음 3주는 오래도록 고생해 온 동지들에게 진 빚 갚으러 올라갔고, 나머지는 얼떨결에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 미련한 짓 하느냐”고 나무라시겠지만 제 입으로 뱉은 것이라 약속 지킨 것 뿐입니다. ‘못 지킬 약속은 하지 말고, 약속했으면 꼭 지키라’고 수 없이 강조하신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나무 위 농성’을 하는 저를 보고 어떤 친구는 “어른들과 자식 걱정 안 하느냐”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못난 애비가 자식에게 보여줄 것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20여 년 만에 해 보는 천막생활이라 적응 훈련을 하며 대비를 했지만 한 주 정도는 적응이 되지 않아 고생했습니다. 사촌 형 둘의 술로 인한 사고로 몸 조심하며 살아온 탓인지 잘 적응해 가는 걸 경험하면서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꼈습니다.


원칙을 강조하신 아버지를 닮은 탓인지 ‘깐깐하다’는 소리를 듣는 인간이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어린 자식에게 미안해서 울었고, 어디 가서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는지 걱정하실 부모님 걱정에 많이 울었습니다. 1월 20일 서울 용산에서 철거민 학살 사건이 있던 날 대봉동에서 철거당한 우리 집이 떠  올라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치가 떨려 너무 견디기 힘들더군요. 운수노동자 박종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내 형제가 죽은 것 같아  울었습니다. 지금은 한 달 넘게 옥쇄파업 투쟁 중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보면서 웁니다. ‘해고는 살인’이듯이 ‘정리해고는 집단 살인’인데 이렇게 잔인하게 ‘알아서 죽어라’고 사정없이 밀어 붙이는지 너무 분하고 원통합니다.



그렇지만 노무현의 죽음에는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으나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은 것은, 지금 이명박 정권이 저지르는 정책의 대부분이 그 때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이렇게 슬퍼하고 분노할 일이 많아지는 이 사회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자’는 지극히 작은 바람이 이리도 힘들고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다고 이길 수 있느냐’고 청년시절부터 말씀하셨죠. 그렇지만 지금 물러서면 나만 죽는 게 아니라 자식과 조카들도 관 속에 들어가기에 물러설 수 없답니다. 아버지 어머니 눈에 넣어도 조금도 아프지 않은 많은 손녀ㆍ손자들을 죽음으로 내몰리게 할 수 없어 작은 힘이나마 저항의 대열에 보탤 뿐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발악이 극에 달해 싸움이 그리 녹록치 않지만 지금 물러서면 정리해고 당하는 노동자들 처럼 죽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지 아들이 그리 투사가 못 된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새총 거머쥐고 ‘저항하자’고 하니 ‘나이가 몇인데 그러느냐’고 하지만 싸우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수시로 맞고 들어와 속 많이 상하게 한 이 자식이라 먼저 남 때려 본 적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앞산터널 공사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집을 강도에게 빼앗겼다고 해서 그냥 물러서지 않고 싸우듯이 힘닿는 데까지 싸우려 합니다. 공사 중이라고 그냥 넘어간다면 금수강산 곳곳을 파헤칠 것이기에 마지막까지 몸부림을 치려는 동지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연을 지키는 선한 싸움을 하다 6명이나 억울하게 고소당해 벌금이 곧 떨어지게 되어 있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좁은 대구지역에서 제 문제가 아니라고 빠지는 것은 아버지가 강조하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요. 제 코가 석자나 빠져 있는 처지이지만 고생한 사람들이 덮어 쓴 짐을 조금씩 나누어지려고 합니다. 돈이 많고 권력을 가진 것이 아니기에 사랑하는 자식에게 ‘불의 앞에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 말고는 지금 보여줄 게 없어 저도 속이 상합니다. 부모님의 이 자식도 벌써 쉰 줄이 되어 예전처럼 서너 시간 운동하던 체력은 간데없지만 몸 관리 잘 해 온 덕분에 이런 선한 싸움을 할 수 있어 기쁘답니다. 제가 못 다한 효도는 동생 내외가 잘 하고 있기에 죄송하다는 말씀 밖에는 달리 드릴 게 없습니다. 가끔 이렇게라도 편지 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