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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민중

옥쇄 파업 중인 쌍용차 노조원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파업하며 공장에서 사는 건 하나도 안 힘들어요. 공권력? 그것도 안 무서워요. 내가 가장 두려운 건....”


마흔을 넘게 살아왔으니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이에 접어든 옥쇄 파업 중인 노동자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의 큰 눈이 잠시 흔들린다. 산전수전 다 겪었을 연배의 사람이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찾아와서, 해고된 우리들 나가라고 하는 그게 제일 두려워요. 사실 회사 다니다보면 가족보다 옆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를 더 많이 보게 되잖습니까. 그런 동료들이 이젠 ‘살아 남은 자’와 ‘짤린 자’로 나뉘어 서로 얼굴 붉히게 생겼으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다. 25살부터 평택 쌍용자동차 사업장에서 일했다. 15년을 꼬박 기름밥 먹으면서 단칸방을 25평 아파트로 넓혔고, 결혼해 딸 둘을 낳았다. 큰 딸은 벌써 13살 초등학교 6학년이다. 딸은 세월을 먹고 자랐으나, 청춘은 그 세월을 따라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법적으로’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아니다. 회사가 그에게 내린 정리해고 통보는 8일부터 효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두려워한 일은 현실이 됐다. 정리해고를 칼날을 피한 동료 노동자들이, 얼마 전까지 함께 잔업, 특근, 철야를 함께 때로는 소주잔을 부딪치던 그 동료들이 자신을 내쫓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쌍용차 비해고 노동자 2500여 명은 16일 오전 평택 쌍용차 사업장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 파업 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살아남은 노동자로 죽은 노동자를 친다! 역시 ‘자본’은 기민하고 영리하며 약자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회사는 살아남은 노동자들에게 “16일 8시30분까지 도원 주차장 앞으로 모여주시구요. 출근 전개가 있으니 안 오면 결근입니다. 그 자리에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자본은 약자들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 때 인정사정 안 봐주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냥 돌진이고 초전박살이다. 결국 그의 가슴에는 대 못이 두 번 박혔다. 전화로 해고 통보를 받은 5월 21일, 그리고 살아남은 동료들이 자신을 내쫓기 위해 찾아온 16일. 해고 통보를 받은 아침 그는 아내와 두 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믿을 수 없고, 가족들은 그 ‘믿을 수 없는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짐을 꾸려 공장으로 들어왔다. 공장을 점거하고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그리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 처음엔 공장 안에서 먹고 자는 일상이, 그리고 차가운 쇠파이프를 손으로 쥐는 게 어색했다. 하지만 이내 그 어색함은 친숙함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게 있다. 아직 아버지의 해고를 모르는 두 딸의 “언제 집에 오느냐”는 문자 메시지를 보면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가슴이 먼저 찢어진다. 그리고는 아직 찢어질 가슴이 남아 있다는 그 사실이 놀라워 또다시 눈물이 난다. 이미 아이들 학원은 모두 정리했다.


월급은 작년 12월부터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얼마를 밀렸고, 얼마를 더 받아야하는지 계산이 서지 않는, 아니 계산 자체가 불필요한 지경이다. 학교에서는 해고 된 노동자의 아이와 살아남은 노동자의 아이들로 갈라진다. 어쩌면 두 딸은 그 ‘갈라짐’을 통해 아버지의 해고를 몸으로 알아챘는지도 모른다. 그는 쌍용자동차를 평생직장으로 생각했다.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머릴 팽팽 돌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그를 바보 취급한다. 국제화 시대에 아직도 ‘평생직장’을 생각하느냐고, 왜 이런 날을 대비해 자기 계발을 하지 않았느냐고 그냥 타박한다. 그러면 옥쇄 파업 중인 노동자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잔업ㆍ특근ㆍ철야를 해야 돈 다운 돈을 만지고 아이들 공부시키는데 어느 세월에 자기 계발에 ‘시간을 내고 투자 하느냐’고 말한다.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아이들 학원엘 보낼 수 없고 저축은 꿈도 못 꾼다. 그걸 알기에 나이 들어가며 몸이 하루하루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일했다. 평생 자동차만 만들던 사람이 다른 일을 하는 건, 평생 공부만 하던 사람이 공장에서 자동차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걸 옥쇄 파업 중인 노동자들은 안다. 그런데 ‘주둥이만 살아 있는 놈’들은 그걸 모르면서 ‘자기 계발과 자신에 대한 투자’를 들먹인다.



파업 중인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잃을 게 없어 더 이상 지킬 것도 없는 그들은, 쇠파이프를 들고 자신이 청춘을 보낸 공장을 지킨다. 자신을 내친 그 공장을 말이다. 여기서 밀리면 그들은 끝인 벼랑 끝에 내몰린 처지다. 공장 곳곳에 “해고는 살인이다”는 문구가 괜히 붙어 있는 게 아니다. 쌍용자동차 공장에 사이렌이 울리면 흰 안전모를 쓰고 긴 쇠파이프를 손에 쉰다. 이 땅에 정리해고가 도입된 이후, 해고의 칼을 맞은 노동자들은 늘 “함께 살자”고 외쳤다. 하지만 그들은 거의 패했지만 그래도 싸운다. 그 길 외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는 “그것 없어도 잘 사는 사람들이, 그것 없으면 죽는 사람들의 것을 기어코 빼앗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것’을 빼앗겨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그들의 손에는 굳은살이 배어 있다. 너무 많이 배어 있어 처연하게 보인다. 옥쇄 파업을 하느라 교회도 가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기도회를 가졌다. 약 오십여명의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지치고 힘든 정신적 압박을 벗고 평화의 시간을 찾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지친 노동자들과 함께 하러 온 목회사자는 “기도의 마음과 정의는 끝내 이긴다. 물리적 충돌을 최대한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으나 그렇게 될지 의문이다. 그런 그들의 등에는 “함께 살자”는 딱 네 글자가 박혀 있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지속 가능한 사회가 이루어진다. (곰배령 가는 길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