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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앞산 상수리나무 위에서 ‘같이 가면 더 멀리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란 노래와 ‘사노라면’이란 노래는 제가  참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부를 때 마다 가슴에 와 닿는 노랫말이 심금을 울리기도 하죠. 청년시절 장래를 약속했던 사람과의 추억이(?) 있어서인지 모르나 즐겨 부릅니다. 교회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다 입 함부로 놀리는 꼰대들로부터 싫은 소리도 많이 듣기도 했습니다.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란 구절은 나이든 지금도 감동적으로 와 닿아 가끔 코끝이 시큰 거리기도 합니다. 함께 가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한 생존의 본능이기도 하죠.




제 친구 중 사람이 너무 좋아 싫다는 사람이 없는 천하호인이 있습니다. 고 2때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으니 30년이 훌쩍 넘어 버렸네요. 그 친구에게 ‘다 좋다는 것은 다 나쁘다는 것이다’며 마냥 ‘사람 좋다는 소리 듣지 말도록 좀 모질게 하라’는 주문을 했지만 마음이 여린 탓에 잘 되지 않더군요. 혈기 넘치던 청년 시절 ‘분명하지 못한 그런 성격은 악용당할 소지가 매우 높다’며 호되게 비판의 칼날을 세우기도 했으나 바뀌지 않으니 뭐라 할 수 없지요. 저도 지쳐 언제부터인지 그냥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친구를 인정하지 않은 제 잘못이 큰 것 같더군요.


이주노동자들의 아픔에 함께 하는 동지이자 친구는 “윤 형은 다 좋은데 적이 너무 많다”며 저의 결정적인 단점을 지적해 준 적이 있습니다. 정말 고맙기 그지없지요. 어디 남의 잘못을 말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입니까? ‘할 건지 말 건지 분명히 하라’는 어떻게 보면 분명하지만 유연하지 못하고 수양이 부족해 주위에 적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내 편 열 명 보다 적 하나가 더 무섭다’는 걸 알면서도 ‘선명해야 한다’는 시건방진 자만에 빠져 있었지요. 비판할 때는 날카롭게 하는 게 맞지만 상대를 껴안는다는 전제 조건이 깔려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칼날만 내 세울 줄 알았지 먼저 바탕에 깔아야 할 관용과 사랑이 부족한 저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같이 가되 먼저 서로 그런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사람이 모이다 보니 어느 모임이나 자신이 주도권을 장악해야 움직이는 집단이나 인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끝까지 가고 책임을 지면서 그렇게 한다면 굳이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그런 짓거리 할 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 무리나 인간들은 암이나 ‘악의 축’과 같은 존재들이라 도려내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이 다치고 상처받기 마련입니다. 제가 진보정당이란 곳 언저리에 머물면서 형편이 닿는 대로 후원이나 하다 ‘당원이 되어야 한다’는 주위의 권고와 ‘이 정도는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시간을 낼 수 있는 자리에 있어서 힘닿는 대로 뛰어 다니고 어지간한 연수는 빠지지 않고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청년시절 하느님나라 확장 운동을 같이 하던 후배들을 만났고, 힘든 길임에도 불구하고 가족들 눈치 봐 가며 고생하는 동지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동안 먹고 사는데 급급해 후원금 얼마 내면서 생색낸 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야말로 분전 뽑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러나 여기도 사람이 모인 곳이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철저히 자기중심을 넘어 진보의 탈을 쓴 이기적인 인간들도 봤습니다. 그런 인간들일 수록 ‘내가 해야 한다’며 잡은 마이크는 안 내 놓으려 하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온갖 흙탕물을 일으키기 마련이죠. 그로 인해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것 보다 더 크기 마련이라 가슴에 피멍이 들기도 합니다.


‘자기 생각이 분명할수록 남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라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지요. 그렇지만 방향이 틀리거나 아닌 것을 맞다고 말하는 사람조차 ‘일리 있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전제조건이 있을 때 동지로서 함께할 수 있는 것이지 무작정 보듬어 안고 가는 것은 동반자살이나 마찬가지라 봅니다. 청년시절 뒤쳐지는 사람들이 귀찮아 혼자 등산을 다녔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이 죽인 종형 두 분의 아픔과, 철거를 당해 망한 우리 집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푸는 데는 그만이었죠. 끓어오르는 분노와 추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체력이 좋을 때니 넘치는 혈기를 나눌 생각은 하지 않고 나 보다 떨어지는 사람을 거추장스러워한 오만이었습니다. 입으로만 ‘약자의 편에 선다’고 한 건방지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체력이 좋을 때니 넘치는 혈기를 나눌 생각은 하지 않고 나 보다 떨어지는 사람을 거추장스러워한 오만이었습니다. 입으로만 ‘약자의 편에 선다’고 한 건방지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같이 가 보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철이 드는 증거’라고 하기에 덕담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혼자 자기 마음대로 가는 재미도 있지만 같이 가는 재미는 더 좋고, 뛰어난 성악가의 독창보다 화음을 이루는 합창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서로 ‘좋은 소리를 내자는 마음이 함께 하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이게 바탕이 된다면 저는 어느 누구와도 같이 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더 마음을 열어야겠지만 지금의 내공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속상하기도 합니다. 저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되겠지요. 앞산을 지키는 것은 내 자신을 지키는 것이기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같이 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