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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어청수 사의표명, 후임 경찰청장 김석기는?

 

어청수가 경찰총수로 있는 동안 경찰은 완전히 과거로 회귀하고 말았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안녕만을 위해 충성을 맹세했던 정치경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런 어청수의 정치경찰의 재등장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되고 말았다. 어청수는  비폭력을 외치던 쇠고기 촛불 집회 참가자들을 방패와 몽둥이, 구둣발로 두들겨 패고 짓밟으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이 아니라 정치경찰로서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만을 향한 과잉충성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 어청수의 청와대 이명박 정권을 향한  과잉충성의 절정은 6.10일 새벽에 세종로에 세운 명박산성이다. ‘서울의 새로운 명소 명박산성’이라며 네티즌들은 조소를 보냈다. 쇠고기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컨테이너 속에 모래주머니를 가득 채우고 철근을 땅에 박고 아예 용접을 한 명박산성을 선보이며 이명박 정권을 향한 과잉 충성의  절정을 보였다. 


▲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에 나와 여유 있게 웃고 있었던 일명 포졸청수인 어청수 전 경찰청장. 차관급인 경찰청장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이렇게 여유 있게 웃었던 적은 없었다.


또한 그는 정권에 반대했던 세력을 검거한다는 명분으로 불교계 수장인 지관 총무원장을 불심 검문 하는 무례도 자행했고, 지도에서 전국 사찰을 아예 지워버리는 무모함도 저질렀다.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정권에만 충성하는 정치 경찰 어청수는 그래서 물러나야 마땅하다. 더구나 어청수는 무덤에 있던 백골단까지 부활시킬 정도였으니 ‘임 향한 충성’은 과히 절대적이었다. 그러던 어청수가 드디어 물러났는데 다행 중 불행이 되어 버렸다. 사의를 표명한 어청수 후임에 이보다 더 악랄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내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이의 말대로 ‘고양이 내려오랬더니 호랑이 올라간 격’이 되여 버린 것이다. 김석기가 누군가,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김석기 서울청장 그는 경찰들에게 촛불집회 참석자 연행 시 2~5만원 포상금을 내걸어 ‘인간사냥꾼’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던 어청수 보다 더 악독한 인물 아닌가? 김석기 신임 경찰청장을 두고 “김석기나 어청수나 아마 독한기로 따지자면 김석기가 더할지도 모르겠어요” “고양이 내려오라고 했더니 호랑이 올라가네요.” “촛불시위 과정에서 강경진압하고 인권 유린한 어청수 퇴임을 그토록 요구할 때는 꼼짝도 않더니, 오히려 더 심한 강경파를 후임으로 내정했네요.”라며 네티즌들의 비난이 일고 있는 이유가 신임 김석기 경찰청장을  잘 평가해 준다.


▲ 2008년 7월30일 서울 동대문운동장 인근에서 열린 ‘경찰관 기동대’ 창설식에 참석해 기동대원들과 악수하고 있는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서울시경이 병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시위진압과 관련한 실질적인 지휘책임이 있다.


그럼 여기서 어청수보다 더한 독한 김석기를 새로운 경찰청장으로 내정한 이명박 정권의 의중을 살펴보자. 민심을 폭력으로 다스린 어청수를 갈아 치우라고 했더니 이보다 더한 독한 김석기를 경찰청장에 내정했다는 사실은  이 정권이 앞으로 어청수 때 보다 더 폭압적으로 민심을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내 보인 것이다.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 방송장악에 절대 충성하고 있는 시중꾼 중의 최고인 최시중의 고교 후배인 김석기를 서울경찰청장으로 앉힌 것부터 어청수의 용도 폐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이 취할 조치가 없다는 참으로 우려스럽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경제 위기로 궁지에 내 몰린 이명박 정권이 국민들을 향해 내 놓을 보따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최근 그리스 민중들의 항거를 보고 실업난에 허덕이는 유럽 국가들이 확산될까 노심초사 하고 있는 것은 국민들의 불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경제상황실을 청와대 지하벙커에 설치한 것도 일부러 위기의식을 조장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해 불만을 표출할 경우 강경하게 밀어 붙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촛불 정국 때 경찰의 폭력에 짓밟히면서도 오직 ‘비폭력’을 외쳤던 국민들이 ‘비폭력 저항’이 더 이상 소용없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이다. 난상 토론을 하면서 거리의 민주주의를 배운 시민들이 더 이상 밀릴 정도로 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87년 6월 항쟁 때 처럼 최소한의 방어를 넘어선 강력한 저항을 불사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권력의 원천’이자 주인인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권리요 자존심이다. 권력은 위임받은 것일 뿐 더 이상은 결코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제 종교인들이 나서서 어설프게 ‘비폭력’을 외친다면 ‘당신들이 먼저 명박산성을 넘어 앞장서라’고 할 정도로 시민들은 철저히 학습을 했다. 국민을 무시한 권력은 스스로 명줄을 단축시켜 무덤을 파는 것일 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