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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국제

신자유주의, 국경 없는 자본이동’ 20년 만에 폐기 직면


 

파생상품 규제 강화…유럽의회 “헤지펀드 등록강제” 촉구


1989년 어느 날, 세계 금융질서를 지휘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미 재무부의 대표가 미국 워싱턴에 모였다. 이들은 과도한 외채 등으로 파산 상황에 내몰린 아르헨티나 등 남미 개도국들에 이후 신자유주의 공식이 된 ‘워싱턴 컨센서스’를 개혁안으로 제시했다. 80년대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을 체계화한 이 처방전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탈규제’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겨온 신자유주의의 공식들이 월가의 금융위기 앞에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규제받지 않는 자본의 방종이 부른 재앙을 보고, 세계 각국은 앞 다퉈 신자유주의에 대한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 닛케이225 지수의 월별 변동 현황.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9월 이후 급락세가 뚜렷하다. (사진:오마이뉴스)


월가가 위치한 미 뉴욕주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약 62조2천억달러(약 6경2200조원)에 달하는 신용디폴트스왑(CDS·채권 발행자의 부도 위험을 바탕으로 설계된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규제에 22일 나섰다. 데이비드 패터슨 뉴욕주지사는 이날 “신용 파생상품이 지금의 위기에 가장 큰 몫을 했다”며 “뉴욕주는 신용디폴트스왑을 보험으로 간주해,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고 ‘블룸버그뉴스’가 전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2002년 “그 규모가 단지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제약될 뿐”이라고 밝힌 신용디폴트스왑은, 신자유주의가 잉태한 첨단 금융상품 가운데 하나다. 연준은 ‘중앙 파생상품부’를 창설해 신용디폴트스왑 등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강화를 추진 중이다.


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파생상품 거래 신고제를 도입해 금융시장의 투명성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3일 보도했다.영국과 미국이 18일 투기적 금융자본의 수단으로 활용된 공매도를 금지한 데 이어, 캐나다ㆍ오스트레일리아ㆍ독일ㆍ프랑스ㆍ대만 등 세계 각국이 금융시장 안정화를 내걸며 공매도 금지에 속속 동참했다. 신자유주의를 급속히 ‘세계화’ 시키는 데 일등공신 노릇을 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본에 대한 규제도 강화된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선물 거래에 대한 규제가 덜한 런던의 대륙간거래소(ICE)와 정보 교환 협정을 지난 6월 체결했다. 대륙간거래소를 활용해 미국산 원유 선물거래를 하는 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독일은 최근 해외 거대자본의 적대적 기업 인수ㆍ합병(M&A)을 막기 위해 외국인 투자를 제한했다. 자본의 자유로운 월경을 자국 기업 보호와 시장 안정이란 명분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주자인 미ㆍ영의 금융자본주의를 비판해온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3일 “세계 금융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수리해야 한다”며 은행 규제 강화 등을 거듭 강조했다. 프랑스는 국제통화기금이 전 세계 금융시장의 위협에 대처하는 쪽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유럽의회도 이날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의 등록 의무화와 지분 공시 등을 강제하는 법규를 제정하도록 유럽연합 집행위에 촉구했다. 79년 마거릿 대처의 집권 이후 시행된 여러 정책으로 신자유주의의 원조로 불리는 영국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싹트고 있다.


고든 브라운 총리는 23일 “자유시장의 힘에 맡기자는 도그마도 틀린 것으로 입증됐다”고 밝혔다. 그는 전 세계 금융시스템을 모든 거래의 투명성과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원칙 등에 따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돈 놓고 돈 먹는 신자유주의는 허구임이 명백히 드러났다. 1997년 외환위기의 교훈을 삼아 대비하지 않으면 엄청난 후 폭풍을 맞을 수 밖에 없다. 부동산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 지금의 한국 경제 여건으로는 견디기 힘든 악몽의 세월이 오고야 만다. 위험에 대비하지 않으면 그 고통은 민중들이 겪지만 부자들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수시장이 취약하면 자본의 증식에도 유익하지 못 하다. (한겨레 기사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