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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나이 쉰 줄에 의사의 멱살을 틀어잡을 뻔한 사연

 

초진환자에게 설명도 안 해준 보기 드문 의사


주말 서울 남산유스호스텔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연수가 있었다. 군위 산골에서 가려면 그 날 출발은 어려우니 미리 대구로 나와야 한다. 그런데 목요일 저녁부터 갑자기 목이 잠기더니 침을 삼키기 힘들어졌다. 알레르기성비염을 달고 살지만 농촌에서 자주 생활하면서 이비인후과를 별로 가지 않았는데 한 주간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무리한 노동을 한 후유증이 나타난 모양이다. 자고나니 목이 더 아프고 콧물도 나고 눈과 머리까지 아프다.


▲ 가끔 치료하러 가는 달서구 이곡동 국민연금회관 네거리에 위치한 한의원. 치료가 독특한데 침과 뜸만 주로 한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원장이 첩약 치료를 절대 권하지 않는다. 초진일 경우 진맥과 각종 검사를 해 병의 원인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금요일 밤 늦도록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몸이 아프니 참으로 난감하다. 경북 북부 지방에서 대구로 오는 시외버스는 칠곡에서 선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보이는 이비인후과를 찾아 놓고 통증치료부터 했다. 몇 일 치료를 받아본 제통의원 의사는 원인을 잘 찾고 환자에게 상세하게 설명해 주어 인근에 사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을 정도다. 진통제 처방도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비인후과 의사는 반대로 초진환자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그냥 치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요즘 같이 고개 돌리면 늘린 게 병원인 세상에 ‘이런 인간이 있는가’ 싶을 정도다. 시간이 걸린다고 주치의사인 후배를 찾아가지 않는 대가를 톡톡히 지불했다.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가서 약성분을 물었더니 우려한 항생제가 들어가 있다. 멱살을 틀어쥐고 싶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몸만 조금 덜 해도 당장 달려가 ‘왜 이런 약을 넣느냐’며 고함을 지르고 싶지만 내 몸이 무거우니 그것마저 귀찮다. 나이 먹어 성질이 누그러진 탓도 있는지 모르겠다.


친절한 의사를 만나자 화는 풀리고


몸이 이러니 주말 연수 약속을 못 지키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 들어 주치한의사를 찾아가 침을 맞았더니 조금 나아졌다. 그런데 치료를 받고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에는 없었던 비다. 같이 가기로 한 당원들이 사정이 생겨 못 가게 되었고, 비가 내린 덕분에 밤늦게 해야 할 일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될 걸 괜히 신경 쓰느라 몸만 고생하고 말았다. 결벽이 병이란 걸 알면서도 잘 안 된다. ‘푹 쉬는 게 좋다’는 의사의 말에 조용한 곳에서 늘어지게 잤다.


▲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신상근 이비인후과원장은 친절하고 설명 잘 해 주기로 유명해 환절기면 환자들이 밀려든다. 의사들 세계에서도 이름나 주치의사인 후배도 경쟁이 안 될 것 같아 ‘인근으로 옮기는 걸 포기했다’고 할 정도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10시 가까이 되었다. 콧물이 더 많이 흐르고 기침과 재채기가 심해 서울행을 포기했다.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서 낯선 사람들이 많은데 피해를 주는 건 더 결례일 것 같아 담당 실무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감기몸살에는 목욕을 하는 게 좋지 않다’는 말을 주치의사인 후배로부터 들었지만 눈을 뜨자 본능적으로 씻고 말았다. 한의원에서 치료를 하고 주치의사보다 더 친절한 이비인후과로 가서 진료를 받는데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하면서 ‘항생제 처방은 하지 않습니다’는 말이 무엇보다 좋았다. 어제 처리하기에 급급하면서도 초진환자에게 아무런 말 한 마디 없이 항생제 처방을 한 의사와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나을 때까지 ‘기침과 재채기를 뱉어내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바로 뱉어낼 경우 감기몸살은 나아도 ‘목이 심하게 상처 받는다’며 마스크를 하고 생활하고 푹 쉬는 게 가장 좋은 치료라고 알려준다. 덕분에 몇 일 동안 아무걱정 없이 푹 쉬면서 내 자신을 성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