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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민중

‘KTX 여승무원들은 철도 공사의 직원’…1500일 싸움의 승리

 

서울지법 “철도공사가 사용자…재계약 거부는 부당 해고”


해고된 지 4년3개월 만이다. 소송을 낸 지는 2년이 다 돼 간다. 26일 막상 “원고의 청구를 전부 인용한다”는 재판장의 목소리가 법정에 울려 퍼지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고속철도(KTX) 해고 여승무원 20여명은 순간 얼어버렸다. 단식과 천막농성을 거듭해왔던 그들은 정작 승소가 확인된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만 봤다. 재판이 끝난 다음 서울중앙지법 562호 법정 문밖으로 나와서야 고생한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 4년 만에 웃음 찾은 KTX 승무원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정규직화를 요구하다 2006년 5월 해고됐던 케이티엑스(KTX) 여승무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근로자 지위확인 등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뒤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법정을 나서고 있다. 4년여 동안 거리에서 복직투쟁을 벌여온 이들 중에는 아기 엄마가 된 이도 있다. (사진: 한겨레신문)

노무현 정권이 야심차게 밀어붙인 비정규직 양산법이 만든 엄청난 비극이다. 당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입안하고 밀어붙인 친노 인사들은 무려 1,500일 넘게 피눈물을 흘리며 온갖 고초를 겪은 승무원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부터 해야 한다. 지난 집권 시절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연합’을 들먹이는 것은 ‘인면수심’이다. 승무원들과 복직 합의를 해 놓고 정권 말기를 틈타 이철 당시 사장은 무책임하게 도망가고 말았다.


20대 중후반에 고속철도(KTX) 승무원이 되었다 거리로 내몰렸던 이들은 이제 30대 안팎의 나이가 됐다. 품에 아기를 안고 있는 이도 있었다. 해고 승무원들을 대표해온 오미선 씨는 “하루라도 빨리 현장에 돌아갈 수 있게 철도공사가 책임을 져 달라”고 했다. 오씨는 “긴 싸움이었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면 현장에 복직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말했다. 기나긴 싸움에 지쳐 도중에 포기한 승무원들도 적지 않다.



노무현 정권의 비정규법과 철도 상업화가 만든 비극


오미선 씨는 “지금까지 철도공사는 매번 ‘법적 판단’에 맡기겠다고 말해왔는데, 가처분에 이어 본안에서도 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주는 같은 결론이 나왔다”며 “철도공사는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씨를 비롯한 승무원들은 계속 ‘복직’을 외쳐야 할 처지다. 한국철도공사가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판결이 최종 확정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약자들을 향해 예리한 칼날을 휘두르는 것이다.


▲ 이 젊은 여성들의 피눈물에 무감각하다면 이 사회는 정말 희망이 없다. 최소한 법원의 판결은 따르는 상식이 필요하다. 나중에 드는 비용은 모두 철도공사가 져야한다. 그 돈은 원가에 묻혀 소비자인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사진:프레시안)


승무원들을 변호해온 최성호 변호사는 “공기업 외주화의 문제는 단순히 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 공익에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눈물로 얼룩진 싸움의 여정은 여성이라는 성차별도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공기업 선진화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한 민영화 정책이 만든 필연적인 피해자들이다. 철도는 사회간접자본으로 공공재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용할 수 있도록 이동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고속철도 위주로 편성하면서 철도로 수익을 올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고 상업화의 기초를 만들었다. 348미터 길이에 시속 300킬로미터 고속으로 운행하는 열차에 안전요원은 3명에 불과하다. 주행 중 사고가 발생한다면 신속한 대처는 아예 불가능하다. 고속열차보다 길이가 훨씬 짧은 국내선 항공기의 승무원이 6명 가까이 되는 것을 감안하면 비교가 안 된다. 공기업이 승객들의 안전은 뒷전인 채 오로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제 철도공사는 항소를 하면서 질질 끌어 비난을 받지 말고 승무원들을 즉각 복귀 시키는 게 공기업으로서 취할 태도다. 지금 당장 부족한 승무원들을 증원시키면 해고 승무원들이 일할 곳은 충분하고 승객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이 만든 비극을 이명박 정부가 더 악랄하게 대응한다면 모든 비난의 화살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승소한 승무원들은 일터로 가고 싶은 소박한 마음 뿐 인데 그것마저 꺾는다면 파렴치한 짓이다. (한겨레신문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