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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앞산 달비골 농성장을 옮기면서

 

800여일 가까이 지키던 앞산 달비골 농성장을 비웠습니다. ‘앞산을 지켜야 한다’는 수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깃든 곳입니다. 재판에 회부된 사람들의 문제가 걸려있어 비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달빅로에 1년 조금 넘게 몸으로 때웠습니다. 다른 일은 거의 하지 않고 달비골 문제에만 몰입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라 더욱 정이 가는지도 모릅니다. 속상한 일도 있었고 재미있고 즐거운 일도 많았던 삶의 애환이 듬뿍 녹아 있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식 이하의 지저분한 일도 있었습니다. 2009년 정월 대보름 장상을 세우며 액운을 쫓는 한 판 잔치를 벌였습니다. ‘앞산을 지키자’는 정성을 가득담은 행사였습니다. 그 날 많은 분들이 ‘개발귀신 물러가라’는 염원을 담아 제사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날의 수입과 지출 흔적이 없는 걸 발견했습니다. 회계를 맡은 자가 기록을 전혀 하지 않은 ‘재정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죠. 그것도 회계 관련 업무로 밥벌이 하는 자가 저질렀습니다.


이런 상식 이하의 짓도 벌어지고, 몸으로 하는 일에는 전혀 보이지 않다고 얼굴파는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뺀질하기 그지없는 군상도 더러 있더군요. ‘나무 위 농성’을 할 때는 그렇게 극진하더니 내려오자 사람대하는 게 180도 다른 인간도 봤습니다. 조직이나 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하지 않는데 개인적으로 온 사람들은 사정없이 밟는 치사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라 ‘어이없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살다보면 별일 다 겪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전혀 틀리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나무 위 농성’을 석달 가까이 해서인지 더 마음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원만 계속이어 졌다면 인천 계양산에서 150여일 가까이 농성한 윤인중 목사의 ‘기록을 갱신하겠다’는 우스개 소리도 하곤 했습니다. 벌목저지 과정에서 재판에 회부되어 피해당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 자리를 지켰는데 거꾸로 부담스러워 하니 정말 어이없는 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끝이 좋아야 만사가 좋다’고 했는데 같이 고생해 놓고는 서로 불편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키고 힘들면 ‘할 만큼 했으니 좀 쉬자’고 진솔하게 말만 했어도 이렇게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속은 드러내지 않고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을 하니 황당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가장 완벽한 알리바이는 정직’이라고 하듯이 자신이 처한 그대로를 이야기 하면 서로 편하고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더러 봅니다. 지구 환경변화에 대해 전 세계가 머리 맞대고 고민하고 있고,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이런 미친 삽질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건설재벌과 권력의 끈끈한 유착 관계는 대구시민들의 환경이나 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부수고 갈아 뭉개는 짓만 해댑니다. 재판에 회부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눈앞의 가시’ 같은 마지막 남은 농성장마저 없애려는 야비한 짓거리를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시공사인 태영건설과 대구시가 얼마나 자신없는 짓을 자행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속이 빤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걸음을 돌려야 하니 더욱 분통이 터집니다.


끈질기게 물어 늘어져야 귀찮아서라도 양보를 하건만 발등의 불이 다급한지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바라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앞산을 부수는 자들은 이런 약점을 잘 알기에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간사라 앞으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일을 이어갈지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연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는 일에 함께 할 것이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라져간 ‘달비골시립기도원’을 보고만 있으려니 억장이 무너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