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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군사반란 주범인 전두환을 왜 대통령이라 부르는가?

 

“제가 오늘 사성장군이 된 것은 군에 여러 가지 인사법상으로나 절차상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로지 이 자리에 참석하신 수경사, 특전사, 각급 지휘관을 위시해서 국보위 그리고 보안부대, 주위에 있는 여러 간부와 전 장병들이 진심으로 국가를 위하는 호국정신에서 여러분들이 모든 난국을 수습하는데 자기희생은 조금도 밝히지 않은 대가를 본인이 죄송스럽게도 영광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 ‘부대 열중쉬어’ 외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이다. 군인정신이 너무 투철한 탓에 튀어 나온 말이니 쿠데타 주범답다.

 

전두환 장군은 자신의 입으로 대장 진급의 불법성을 스스로 인정했다. 1980년 8월 5일 부하들이 마련해 준 대장 진급 및 축하 다과회에서. 그리고 고작 17일 만에 전역한다.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 전 어떻게든 대장 ‘감투’도 꼭 한 번 써봐야겠다는 전두환의 욕심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KBS는 그 ‘웃기는 전역식’을 생중계했다. 1980년 8월 22일이었다. ‘전두환 장군의 이모저모’란 1시간 짜리 특집방송도 내보냈는데 그 한 대목이 가관이다.


“시대가 영웅을 낳듯 혼돈의 시대를 이끌어 갈 새 지도자상은 어느 날 갑자기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시련과 도전에 맞서 새 시대의 지도자로 추앙 받는 전두환 장군”.....


2007년 KBS ‘미디어포커스’는 6월 항쟁 20년을 맞아 특집 프로그램 ‘각하, 만수무강하십시오’와 ‘하늘이 내리신 대통령’을 2주에 걸쳐 방영했다.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을 찬양하는데 앞장섰던 방송국, 그 부끄러운 과거를 가감 없이 내보냈다. 그 중에서 ‘가장 심한 5프로’를 골라 소개했다.


먼저 5위! TBC가 1980년 8월 31일 방송한 ‘내가 본 전두환 대통령’


“안녕하십니까? 우리의 새 대통령으로 전두환 장군이 당선되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는 바입니다..... 우리나라는 지척에 악랄한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고 있는 북괴와 대치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우리나라에 전두환 대통령을 내려주신 하늘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드리다가 TBC는 ‘하늘이 내려준 대통령’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4위! 박지성 중계는 저리 가라! 각하 귀국 실황중계


“이제 비행기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대통령 일행이 탑승한 특별기, 공항 활주로 동남 방향에서 서서히 기수를 아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제 착륙할 순간입니다. 서서히 기수를 아래로 향한 채 터치다운하기 직전입니다. 이제 착륙할 순간입니다. 만장의 많은 환영객들 수기를 흔들어 환영하고 있습니다. 착륙했습니다.”


스포츠 중계는 ‘저리 가라’할 정도였고, 심지어 아나운서는 ‘신기’도 보인다. 아직 ‘각하’의 얼굴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4만여 리에 이르는 긴 여정에도 조금도 피로한 기색이 없는 건강한 모습’이라고 대놓고 구라를 쳤다. 1981년 7월 9일 KBS의 아세안 5개국 순방 귀국 실황 중계가 그랬다.


3위! 은유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MBC


“그는 부식돼 가는 돌 더미를 정확하고 거침없이 도려냈으며, 그러나 우리는 그를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는 케냐에서 대통령을 만났다. 우리는 그를 라스팔마스에서 봤다. 또 우리는 어느 신작로 위에서 우리가 타고 가는 버스를 염려하는 대통령을 뒷날 뉴스에서 봤다 … 오늘 세계인들은 확신의 지도자가 없음에 궁핍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그 확신의 지도자를 가짐으로 해서 소망의 새해를 기다릴 수 있다.”


1982년 12월 MBC에서 방영한 송년보도특집 내용이다. 제목은 ‘민족 활력에 불을 당기며-정상의 82년’. 너무 불을 당기다보니 졸지에 전두환은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비라고 못 내리게 할쏘냐.


2위! 마침내 ‘단비까지 내리게 한 각하’


“백악관 직원들하고 잠깐 이야기를 했더니 사실은 이게 상당히 단비랍니다. 아, 그런데 이상해요. 전두환 대통령이 도착하는 곳마다 약간씩 비가 내리는데 말이죠.”, “단비를 몰고 온 전두환 대통령을 취재하기 위해 미국의 보도진 80여명과 국내 보도진 70여명의 취재 경쟁이 2월 워싱턴 초겨울 비 추위를 녹였다.”며 찬양에 넋을 놓았다. 그래서 “서울보다도 더 추운 겨울에 어느 날 오후에 찾아든 우리 대통령의 풍성한 웃음에 팔을 휘저으며 태극기를 흔드는 꼬마들은 그만 추위를 잊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설의 고향’이 따로 없다.


그리고 1위! 각하를 위해서라면


이와 같은 ‘신용비어천가’를 관람한 학생들은 당시 ‘미디어 포커스’를 통해 충격적이란 반응을 나타냈다. 분명 ‘한 줄 짜리 역사’와는 크게 달랐으리라. 특히 인상적이었던 말. 재미있다고 보는 건지, 그 때 사람들이 재미있게 본 건지, 재미있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아닌 말로 돌아 버리겠다. 전두환 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 나타나서가 아니다. 무슨 위대한 사람인양 달려드는 카메라 때문도 아니다. 언론의 호칭 때문이다. 여기도, 저기도, 하나같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빈소를 찾았다’고 한다. 왜 전두환 전 대통령인가. 왜 전두환을 대통령이라 부르는가?



위에 봤듯이 1980년대 ‘골 만 번’도 ‘각하’소리를 들었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고도 모자라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천문학적인 돈까지 착복했다. 엄연한 헌정파괴자로 사법적 판단도 이미 끝난 지 오래다. 게다가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며 1900억 원에 가까운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는 엄연한 범법자다. 그를 왜 아직도 대통령이라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다. 비록 1997년 사면ㆍ복권됐다 하나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관한 법률’ 제7조는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다. 예우까지 복권되진 않는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일찍부터 조선일보는 ‘노무현 씨’라고 불렀던 것 아닌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많은 비판을 감수하면서 그를 용서했다. “용서만이 참된 승리를 얻는 길”이란 철학 때문이었다. 허나 단서 또한 분명했다. “나쁜 정치를 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으나, 나쁜 정치는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책에서 ‘전두환 씨’라 적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대통령은 정치가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란 호칭 자체에 ‘나쁜 정치도 용서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더 이상은 헛갈리게 하지 말자. 안 그래도 전두환을 너무 깍듯하게 대통령으로 대접해주는 현실에 우리 자식들이 어리둥절해 한다. 그래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버려야 한다. (오마이뉴스 블로그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