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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ㆍ경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만 할 수 없는 이유는?

 

결정적인 순간에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승부수를 던지며 승승장구 했던 정치인 노무현을 보면서 ‘저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대통령 노무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나 이명박 정권이 검찰을 통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강압 수사하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전과 14범에 측근들의 온갖 비리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주제에 무슨 ‘청렴한 사람’처럼 비치려고 저런 짓을 하는가 싶어 웃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 정권의 측근들이 저지른 비리를 묻어 두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2009년 5월 23일 오전 9시 30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발표를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누가, 노 무 현을 죽음으로 내 몰았는가?”라고 봅니다.



비록 그가 대통령으로서 잘 한 것이 없다 할지라도 노무현만큼이라도 깨끗하게 정치한 대통령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1980년 5월 죄 없는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 수 천 억 원의 정치자금을 긁어모은 전두환은 아직도 떵떵 거리면서도 ‘전 재산은 29만원’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지요. 애비가 29만원 밖에 없다는데 전두환의 둘째 아들 전재용은 30억짜리 호화 고급 주택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에 분통이 터지더군요. 노태우는 도둑질한 돈에 분쟁이 벌어져 조카와 소송을 하고 있지만 자식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아들 김현철이 저지른 비리 때문에 사과하지 않기로 유명한 김영삼이 막판에 가서야 ‘자식의 잘못은 부모의 잘못’이라고 마지못해 시늉을 내긴했지요.


온갖 비리와 민중들의 고혈을 쥐어 짠 권력 도둑놈들은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데 ‘노무현’은 죽음을 택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넘어 이명박 정권을 향한 분노를 터뜨리고 있습니다. 지난 날 삶의 잘잘못을 떠나 사람이 죽으면 관대한 게 우리 정서라 이 글을 쓰는 게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이명박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중 이 땅 민중들에게 준 상처는 너무 많아 일일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죽었고 아직 ‘장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기본 예의가 아니다’고 비난할 사람이 많은 게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자연인이 아닌 전직 대통령 노무현을 냉엄하게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개인이 아닌 공인이고 국정의 최고 책임자였기 때문이죠.



김대중 정권 때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체제가 노무현 정권에 와서 노골화되었음을 우리 사회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의료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는 커녕 돈 벌이로 전락시켜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을 내팽개치는 ‘의료민영화’를 들고 나온 것은 노무현 정권 때입니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노인들의 진료 회수까지 제한해 ‘노인들의 파스’까지 빼앗아간 벼룩의 간을 빼 먹은 ‘유시민의 의료 개혁’은 국민의 건강을 ‘알아서 하라’는 절정판임에 분명합니다. 이명박 정권은 한 술 더 뜨지만 엄밀히 말해 ‘노무현이 불 지르고 이명박은 시너 갖다 부은 격’이라고 할 수 있죠.



어디 그 뿐인가요? 산재사고 환자에 대한 강제 종결과 불승인 남발은 너무 심해 견디지 못한 산재환자들이 자살하는 일이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본의 논리를 철저히 대변한 것으로 김대중 정권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방용석이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으로 있을 때 가장 악랄하게 내부 지침을 내렸습니다. 산재환자들에 대한 ‘집단 살인’이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비정규직 관련 법도 노동계와 학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 붙여 급기야 이명박 정권이 ‘4년 연장’을 들고 나오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지요. 한나라당이 법을 만든 게 아니라 학생 운동부터 시작해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그 잘난 ‘386의장님 출신’들이 만들어 비정규직은 사회 곳곳에 늘려 있는 게 현실입니다.


▲ 남녀를 불문하고 이랜드 노동자들을 팡패로 머리를 내려찍는 경찰병력, 남의 집 귀한 아들들을 군복무를 저런데 동원해 비정규직 문제를 억압해 버렸다.


경찰의 폭력적인 시위진압 역시 마찬가지이죠. 농민 사망 사건과 포항건설노조원의 죽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자에 대한 문책마저 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엉망이라 불러 마땅하다고 봅니다. 아니 ‘폭력진압’을 묵인해 가며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켰습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방패로 찍었고, 권영길 국회의원 사무실까지 경찰 병력이 밀고 들어가 단식 농성으로 항의하자 이해찬 국무총리가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위해 어디라도 갈 수 있건만  한미FTA 협상장에 발도 들여 놓지 못하도록 경찰병력으로 에워싸 닭장버스 매연을 마시도록 하는 추태를 부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고요.



이랜드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매장을 점거한 채 농성을 할 때도 심상정 의원을 남자 경찰이 달려들어 끌어내는 와중에 상의가 벗겨지는 일도 있었으니 헌법 기관 알기를 홍어 생식기 정도로 여긴 것이죠. 무슨 위험분자들이 있다고 특수임무부대인 경찰 특공대를 로보캅처럼 중무장해 투입시켰는지 권력 상층부의 묵인 없이 가능한 일인가요? ‘먹고 살게 월급 좀 더 올려주고 자르지 말고 그냥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여성들의 지극히 소박한 그들의 피눈물 나는 목소리를 경찰병력으로 사정없이 뒤엎어 버렸습니다. ‘민주정부가 이래도 되느냐’는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금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은 그 때 이미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펙회담 반대 집회 역시 헬기까지 동원해 공포감을 조성하며 ‘무현산성’을 쌓아 충성하도록 경찰을 부추기기까지 했습니다. 향후 한반도에 50여년 간 주둔할 미군기지 조성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몰아내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계엄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 병력을 투입해 작전을 감행해버렸습니다. 작전명 ‘여명의 황새울’을 실행에 옮긴 최종책임자이기에 분명히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성운동의 경력을 바탕으로 총리가 된 한명숙은 아무 말 없이 바로 서명을 했고 민주당의 대부분 의원들이 침묵했습니다. 이게 과연 ‘절차상의 민주주의 완성’인지 의문입니다.


자살까지 할 정도가 아니라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분명 정치적인 타살이라고 믿습니다. 자신의 부도덕함을 감추기 위해 온간 시비를 건 이명박 정권과, 수사 중인 사실을 알리지 못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사실 유포’까지 저지른 정권의 주구인 검찰의 잘못을 굳이 물을 필요조차 없지요. 총리인 한승수가 문상을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이회창 역시 문전박대를 넘어 계란까지 뒤집어쓰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더군요. 정치적 타살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임에 분명합니다. 대통령 시절 민중들의 삶을 쥐어 짠 것을 더 이상 거론하는 것은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이 이 정도에서 줄이려 합니다. 편히 쉬시고 하늘나라 가서나마 고생한 측근들을 위로하라는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