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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왜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리본을 달자고 하는가?

 

김수환 추기경 애도 일변도 분위기 배경이 의문


우리는 어지간한 사람이라도 죽으면 잘못을 묻어줍니다. 아무리 악인이라도 빈소에서는 가만히 있는 것은 그게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 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직 관도 묻히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말이 일리 있지만 김수환 추기경같은 상징적인 지도자나 공인에 대한 공과는 분명히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이명박 정권이 서울 용산철거민에 대한 학살 여론을 물타기 하기 위해 연쇄살인범을 이용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광주민중항쟁 이후 가장 많은 민간인이 죽은 이명박 판 ‘화려한 휴가’에 대한 비난이 두려워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죠. 천하에 몹쓸 놈의 권력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비서실장을 보내는 관례를 깨고 이명박이 직접 명동성당을 방문한 것 역시 이런 여론 희석의 연장선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듭니다.


▲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오후 김수환 추기경의 주검이 안치된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안내를 받아 조문하고 있다. 비서실장을 보낸 관례를 깬 것으로 수상한 냄새가 난다. (사진:연합뉴스)


‘김수환 추기경 선종’이라는 소식을 듣고 한글사전을 몇 군데 뒤졌으나 나오지 않더군요. 한글학회 실무자들이 추천해준 관점이 좋다는 ‘연세한국어사전’과 일제 총독부 칙령에 따라 우리말을 망친 선봉장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이희승 감수의 ‘에센스국어사전’에도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종교집단만이 사용하는 그들만의 언어인 종교방언인 것 같습니다. 다만 ‘임종 때 성사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가톨릭)’이라는 설명은 있습니다. 죄의 유무는 전적인 하느님의 몫이라는 것은 신학의 기본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리라 봅니다. 하느님의 영역을 인간이 판단하는 것은 자신들이 고백하는 절대자의 영역을 침범하는 무례한 짓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고인의 삶을 보고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있지만요.


고인이지만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성역 없는 비판을 하자


‘비판에 성역은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투명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비판은 공정해야 하고 잘잘못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몸을 바치다 세상 떠난 늦봄 문익환 목사님을 개인적으로 존경하지만 그 분의 과오에 대해서는 존경 못지않게 냉철하게 비판도 합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누구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냉엄한 평가를 하고, 그런 잘못마저도 껴안아 주는 것이 사랑이라 믿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에 많은 분들이 애도를 표합니다. 이명박 마저 직접 찾아가는 연출을 할 정도로 관심이 지대합니다.


그러나 저는 종교지도자요 한국천주교의 상징적인 인물인 그 분이 과연 ‘많은 사람들이 슬퍼할 정도의 인물인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다’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계는 있지만 이제 세상을 떠났으니 묻고 넘어가자’는 이들도 있고, “아니다. 김수환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 땅 민중들을 몇 번이나 배신했다. 죽음에 슬퍼만 할 일이 아니다.”고 아주 냉정한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저는 양비론이나 ‘모두 일리가 있다’는 애매한 말에 동의해서는 안 되고, 보다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봅니다. 흑백이 아닌 회색과 다양한 색이 존재하고 있지만 어느 것이 옳고 그런 것인지 구분하자는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다까끼 마사오(박정희) 시절부터 군사독재 시절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애 쓴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청렴하게 사신 분이라는 말도 들었으나 권력(종교권력)을 향한 그의 욕심은 대단했다고 봅니다. 권력 욕심 없는 사람이 보수 우익인 천주교 내에서 추기경이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 땅의 민주화와 고난 받는 민중들과 함께 해 온 정의구현사제단에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천주교 내의 권력 구조 때문에 표현하기 어려워 무척 고민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듯이 정의구현사제단에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옷 벗을 각오까지 하지 않으면 ‘영원한 미결 사건’으로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개신교의 경우 교권을 장악한 무리들과 맞서다 목사직도 박탈당하고 출교라는 신앙인에 대한 간접살인까지 당하면서 싸운 분들이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애도의 행렬이 계속 이어지는데 찬물을 끼얹는 것 같지만 추기경인 김수환에 대해 저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으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한 친일파인명사전에 올라와 있지 않은 걸 보니 그리 큰 친일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병이라면 당연히 강제 징집이지만 장교를 징집한다는 말은 역사를 아무리 공부해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김수환 추기경은 평화방송에 출연해 ‘징병으로 끌려가 죽을 고생했다’고 말했을 뿐 “내가 장교로 간 것은 잘못이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에게 완벽이 아닌 솔직함을 요구한다.


공인이요 지도자라면 어느 누구보다 먼저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해야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나 적당히 줄 섰다’고 잘못을 털어 놓는데 어느 누가 비난하겠습니까? 공인이요 지도자로서 김수환은 매우 적절치 못한 처신을 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천주교가 아무리 교구 단위로 움직이고 수도회 별로 따로 살림살이 한다고 하지만 비신자들은 ‘같은 식구’로 본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분명히 교단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잘못을 고백한다’는 어느 목회자처럼 솔직한 것을 원하지 완벽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허물이 있기에 아무리 존경하는 인물이나 지도자라 할지라도 완벽을 바라지는 않으나 솔직한 것은 필요덕목이라 봅니다. 천주교의 친일행위자 명단에 올라 있는 노기남 주교 역시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서까지 욕을 먹는 것이죠. 자신의 부일(친일) 행위를 먼저 고백하지 않은 자가 지도자로 있다면 그 조직은 결코 건강하지 못합니다. 개신교의 진보신학의 원천이라 일컫는 (요즘은 학생 자르기로 유명하고 돈 냄새가 진동하지만) 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를 만들고 이끈 장공 김재준 목사 역시 신사참배를 했으며, 부일 행위를 한 과오에 대해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기장에서는 김재준을 비판하면 ‘종로5가 마피아’들의 눈알이 뒤집어 질 정도로 성역이지만 그런 일방적인 감싸기는 명백한 잘못으로 비난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한반도를 상대로 목회했다는 평가를 받는 문익환 목사님과 장준하 선생님도 비판하는데 김재준을 비판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비판에 성역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기에 김수환 추기경의 부일 행위와 결정적인 순간에 민중들을 배반한 행위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이라면 굳이 거론할 이유도 없고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다만 공인이요 한국천주교의 상징적인 인물이기에 문외한이지만 욕먹을 각오하고 비판의 글을 씁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에 대해 저는 ‘선종’이나 ‘서거’란 표현은 매우 적절치 못할뿐더러 성인의 죽음으로 미화하는 것 역시 올바른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고 분노하는 게 하느님의 뜻



서울 용산에서 강제철거에 항의하다 이명박 정권의 잔인하기 그지없는 폭력으로 앞니가 부러지고 두개골이 박살나고 손가락이 부러진 채 죽어간 우리 이웃들부터 먼저 슬퍼하는 게 하느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철거당하기 전만 해도 실평수 100평의 큰 식당을 운영해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아갔던 소시민들, 아들과 같이 일식집을 운영해 보겠다는 지극히 작은 소망을 가졌던 분들의 억울한 죽음에 눈길을 떼어서는 안 됩니다. 며느리 앞에서 칠순 노인이 성기를 걷어차이는 수모를 당해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면서 아들과 같이 올라갔다가 잔인한 경찰 폭력에 의해 세상을 떠난 분들과 유가족들에게 먼저 슬픔을 보내는 것이 정녕 ‘지극히 작은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용산학살의 눈길을 돌리기 위해 연쇄살인범까지 악용한 게 들통 나자 겨우 행정관의 사표로 무마 하고,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을 애도하는 분위기로 몰아 억울하게 죽은 분들과 유가족들의 가슴에 또 다시 대못을 박으려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잘잘못에 대해 냉정한 평가와 함께 ‘용산학살의 물 타기’에 말려들지 않도록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김수환 보다 용산에서 이명박 정권의 폭력과 삼성ㆍ대림ㆍ포스코 건설과 같은 건설자본의 탐욕에 의해 세상을 떠난 분들의 명복을 먼지 빌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