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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앞산 ‘상수리나무 위’에서 보낸 마지막 화요일의 편지.

 

“행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남에게 행복을 나누어 줄수 없고, 자유를 누려보지 않은 사람이 더 큰 자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허락할 수 없다. 하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집단이 더 건강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주장을 세상은 얼마나 진실하게 들어줄 수 있을까?”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기’의 주인공인 목수정 씨가 쓴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흔히 성직자로 부르는 목사ㆍ신부ㆍ승려들 중 얼굴에 고약하기 그지없는 냄새가 그대로 묻어나는 사람들을 봅니다. 특히 50대 이상의 승려들 중에 그런 얼굴이 더 많은데 대부분 예전에 주먹 좀 쓴 사람들이 많죠. 조계사가 있는 서울 종로경찰서의 날고뛰는 정보과 형사들은 “중들은 믿지 않는다 고 할 정도니 어떤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겁니다. 그런 깎두기 얼굴에다 웃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굳은 얼굴로 어떻게 남의 영혼을 지도할 수 있을까 의문이 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지금의 삶이 빡빡할 수도 있고, 성장기 환경에 문제가 많아 받은 상처가 깊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것 같다는 연구 보고서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 앞산꼭지와 함께하는 ‘환경과 생명을 생각하는 교사’들의 용두골 문화탐방 모습. 고산골로 올라가는 용두토성 곳곳에 이런 문화유적이 많이 있어 잘 보존하고 가꿀 경우 문화체험 상품으로도 개발이 가능하다.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약자와 소수자’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지요. 잘못을 해 놓고는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없는 불행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인데.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 남을 존중할 수가 없지요. 그런 사람일수록 강자에게는 숙이고 약자는 사정없이 짓밟아 버리는 폭력도 서슴지 않습니다. 심신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라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인간이 ‘건강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주장하면 세상이 얼마나 진실하게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들어주는 게 이상할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별별 사람 다 겪었지만 ‘강자에게는 한 없이 약하면서 약자는 사정없이 짓밟는 인간’들을 진보나 보수 할 것 없이 어느 집단에서나 봤습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인지도 모릅니다. 진보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자기 성찰 없이 ‘변혁’만 외치는 것을 봅니다. 개인과 구조를 구분하는 선이 어디인지 정말 애매하기 그지없고 상황에 따라 그 경계는 다르기 마련인데, 모든 문제를 구조적인 탓으로 돌려 버리고 자신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버립니다. 한 두 사람이야 모르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나 많은 사람이 속지는 않지요. 이런 사람이 있으면 여러 사람 괴롭습니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지는 않았는지 지난 날을 되돌아봅니다.



제가 상수리나무 위에 올라온 것을 보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올라갔다’며 극찬을 하는 분이 있더군요. 저는 결코 포기하고 올라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얻으려고 왔습니다. 생명을 얻고 앞산을 지키기 위해 온 것일 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구시와 태영건설이 앞산터널 공사를 포기하도록 싸울 뿐이지요. 상수리나무 위에 올라와 책도 좀 보고, 글도 쓰려고 무거운 한글사전을 두 권이나 가져왔는데 자동차 소음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아 불편하네요.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마다 사전은 긴요하게 잘 사용하고 있지만 책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어 속이 상한답니다.


사고로 몇 번 입원 했을 때 종일 책을 보면서 소중하게 보냈는데 여기 오니 매일 일기 쓰랴, 그것도 일기장에 직접 쓰고 인터넷으로도 올리려 하니 시간이 많이 들더군요. 거기에다 나무 위 소식을 곳곳에 퍼 날라야 하니 ‘앞산시립기도원’에 들어온 게 아니라 ‘앞산꼭지 상근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러 빼 먹기도 하고 둘 중 하나는 짐을 덜어 줬으면 좋겠는데 ‘흔적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주문에 할 수 밖에요. 세끼 꼬박 얻어먹는 처지라 말 안 들을 수도 없고...... ^^ 생각보다 업무량이 많아 청년시절 어느 기구에 상근한 후 처음으로 상근자가 되어 잡무 처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동안 밀린 빚 갈이 하러 입산했다가 상근자 노릇까지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런 경우에 ‘당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나무 위에서 ‘상근자 처우 개선하라’고 할 수도 없고 아무튼 챙겨주는 밥 잘 먹고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매일 온 몸을 씻었는데 안 한지 열흘이 넘었고, 목욕도 못해 몸이 불편하기 시작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욕할 시간만 준다면 좀 더 오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기 예보를 보니 오늘과 내일은 바람이 제법 분다고 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새벽부터 바람이 세게 불어 나무 위 천막이 이리저리 흔들리네요. 건설현장에서 수시로 경험한 저야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이 올라오면 겁을 먹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건설현장 곳곳을 돌아다닌 ‘야전체질’이라 적응하나는 잘 하고 있습니다. 밥벌이 때문에 체험한 것이 생명을 살리고 앞산을 지키는 일에 사용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