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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세월호 ‘이제 그만하라’고?

서른 초반 때 다닌 교회에 동갑내기 전도사가 있었다. 전두환ㆍ노태우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켜는 내가 너무 이상했는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용서하면 안 되겠느냐’며 훈수를 두곤 했다. 건달 족보에도 못 끼는 동네 뒷골목 똘마니 주제에 어느 날 예수 믿는답시고 눈물 몇 방울 흘리고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설레발이 친 과거사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제법 경건한 척 해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 후 신학교 다니면서 정신 차려 공부도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강의 빼 먹는 건 예사고, 허구한 날 고스톱에 당구에 미쳐 그것마저 하지 않은 완전 엉터리니 걸핏하면 ‘믿습니다’만 읊어댔다. 얼마나 공부를 안 했는지 목사 고시도 10년 넘게 떨어졌다. 당시 한겨레신문 지국을 할 때라 어느 날 교회 옆을 지나다 만났더니 ‘윤 선생, 차나 한잔 합시다’며 사무실로 부르기에 갔더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전두환ㆍ노태우 용서하라‘고 또 훈수를 두는 게 아닌가.


순간 뚜껑이 열려 “전두환이가 우리 집 전 재산을 빼앗아가 집이 폭삭 망하고, 종형 두 분도 세상을 잃었다. 너 같으면 용서란 말이 나오겠느냐?”며 언성이 높아졌다. 교회 후배들 말처럼 평소는 가만히 있다가도 ‘전두환ㆍ노태우’ 말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졌으니 그 날도 피눈물을 글썽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로 훈수질은 하지 않았지만 교회에서 완전히 찍히고 말았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아직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한 명도 구하지 않은 자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용서해서도 안 된다. 기성세대는 이 일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으며, 한 명도 구하지 않은 박근혜 정권과 이 사건을 덮으려는 자들을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된다. 용서는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니다. (사진: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