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안 돌아가는 농촌 현실
대구 달서구에 당적이 있는 저는 지역구 인근인 경북 성주에서 밥벌이 하며 삽니다. 벽면서생처럼 생긴 외모와는 달리 저는 몸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쉰 줄의 늙다리를 이젠 받아줄 곳도 없거니와, 수 없이 겹친 산재사고로 건설현장으로 돌아가기 싫어 맑은 공기 마시며 일하고 있습니다. 한 겨울이라도 비닐온실 안은 10시만 되면 폭염이라 견딜 수 없습니다. 더구나 종일 땀 흘리면 진보는 커녕 보수도 생각나지 않는 멍한 상태가 되죠.
저는 요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밥 몇 술 뜨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요즘 성주는 작물의 넝쿨을 걷어내고 밭 소독을 하는 등 특수작물 농사 준비에 한창입니다. 농촌이 고령화 되는데다 젊은 사람들도 중요한 농사 일만 자기들이 할 뿐 설치나 제거 등은 모두 외주를 줄 정도로 세상은 변했습니다. 가족이나 이웃이 달려들어 파이프 설치하고 비닐을 씌우는 건 옛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일이 만만치 않아 힘쓰고 어려운 건 30대의 건장한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지금보다 비용은 더 증가할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온실 설치가 어려운 상태까지 와 있습니다. 조선족 동포는 물론이려니와 멀리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농업 노동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현장에서 보면서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건 필수지 결코 선택이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이런 와중에도 통합 논의와 관련한 모임이 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갔고, 당을 지키겠다는 동지들과 머리 맞대는 게 기쁨을 누렸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전 현 대표들이 당론을 거부해도 되는가?
통합논의가 오가면서 견해가 다를 줄 알았던 당원들이 ‘끝까지 지켜야 한다’며 힘겹게 버티는 걸 보고 세상 몇 년이라도 더 산 저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더군요. 어지간한 노동자들의 하루 일당을 교통비로 지출하면서 대구를 오간 건 ‘유일한 진보정당을 지켜야 한다’는 동지들의 열정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올 초 당직 선거에 출마하면서 ‘통합논의가 본격적으로 불거질 것’이라 예측은 했으나 이렇게 피 터질 줄 상상조차 못해 마음에 큰 상처가 생긴 당원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어쩌면 통합논의 때 보다 불신의 골이 더 깊어질지 몰라 걱정입니다. 이는 당론을 거부하면서까지 고집스레 원인제공을 한 노회찬ㆍ심상정ㆍ조승수 세 분이 책임을 져야합니다.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동당과 통합 문제를 부결한지 이틀 후 당론을 전면으로 거부하며 통합연대를 출범시켰습니다. 부결될 줄 알고 준비 단단히 하셨더군요. 진보신당을 만드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당의 대표까지 역임한 분들이 이러니 누가 물을까 겁납니다. ‘주사파와 같이 할 수 없다’며 진보신당을 만든 전 사무총장들도 마찬가지고요.
지금까지 보수정당의 누가 대표까지 한 사람이 당론을 거부하고 ‘통합은 대세’라며 간 큰 짓 하는 걸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 후보였던 손학규 씨는 ‘한나라당과 맞지 않다’며 뛰쳐나왔지 당론을 거부하며 세력을 조직하지 않았습니다. 명색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공인이자 진보정당의 대표였던 사람들이 이런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해도 되는지 저만 납득할 수 없을까요? ‘대표가 깽판치는 그런 정당에 있느냐’는 조카와 자식들의 눈총이 이렇게 무섭기는 처음입니다.
내부에서 당을 흔드는 건 예의가 아니다.
저는 진보신당을 지키는 게 진보정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북한 문제를 비롯한 분명한 제동장치가 없는 한 민주노동당의 최대 주주를 믿을 수 없기에 아무리 집이 넓어지고 살림살이가 늘어난다 해도 불편하게 살 생각은 없습니다. ‘3.27 대의원회’ 결정처럼 ‘우리와 철학을 같이하는 정치세력과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게 조직 내부의 갈등을 최대한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독자론의 견해를 갖고 뛰었지만 늘 무거운 마음뿐 입니다. 당권을 가진 세력이 통합이니 우리가 이긴 후 당을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한다는 걱정이 늘 떠나지 않았습니다. ‘실무는 누구나 경험하면 된다’고 하지만 지금과 같이 당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상황에서 하루 속히 안정화 시켜야 하니 더 무거운 게 사실입니다. 이럴 때 김형탁 씨가 말한 것처럼 ‘대중의 힘을 믿고 나가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제가 지금까지 몸으로 살아왔다지만 노회찬ㆍ심상정ㆍ조승수 세분이 살아온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몇 차례 감옥도 갔다 오고, 오랜 세월 수배 생활도 마다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온 세 분에 비하면 저는 너무 편하게 청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미안한 마음 뿐이라 ‘교회 헌금은 하지 않더라고 후원은 하자’고 다짐하고 작은 실천을 해 왔습니다. 그런 인연이 이어져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고 지금의 동지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릴 놓아주고 갈 길 가시라.
지금 제가 어디 가서 ‘세상을 바꾸자’며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사람들을 만나겠습니까? 이런 소중한 인연을 버리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고 싶은 말 참느라 병 생길 지경입니다. 곧 2차 선언을 조직한다고 ‘통합은 대세요 민중의 요구’라며 사람들을 보채겠지요. 서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난리칠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더 이상 상처주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려 싸웠으면 이젠 화해를 해야 하는데 계속 싸우면 어떻게 됩니까?
이미 떠난 마음이 쉽게 바뀔리 만무하다는 건 중학생인 우리 딸도 잘 압니다. 개인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고요. 그러기에 저는 통합연대가 말하는 내용을 존중할 수 없으나 인정은 합니다. 그렇지만 ‘조직의 결정과 합의’를 무시하는 상식에 어긋난 정치행위는 더 이상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상정 씨가 작년 경기지사 후보 사퇴를 했을 때 김정진 동지가 ‘이제 우리를 놓아주고 떠나시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의 길로 가겠다면 진보신당을 탈당하고 가시란 말을 전합니다. 가끔 연락드리는 칠십대 중반의 은사님들도 ‘통합은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핵심 아닌가? 그 문제는 작년에 민주노동당이 한 것 처럼 연립정부 구성인데 진보정당이 그래서 되느냐?’고 말씀 하시고, 국내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기관의 후배들도 같은 말을 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정한 길 떠나시는데 말릴 기운도 없지만 ‘더 이상 흔들지 말고 깔끔하게 가시라’는 부탁을 간곡히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