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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ㆍ경제

‘야권단일정당 100만 민란’을 주장하는 문성근 님에게

 

‘100만 민란’은 권영길의 ‘100만 민중대회’와 흡사


문성근 님이 앞장서서 하는 ‘100만 민란운동’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접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저는 문성근 님을 개인적으로 전혀 모릅니다. ‘한반도를 상대로 목회를 한 큰 어른’인 늦봄 문익환 목사님의 아들이란 것과,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정도만 알죠. 물론 우리 영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신 것도 압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에 많은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자리도 맡지 않고, 오직 연기자의 길로 간 보기 드문 신념이 뚜렷한 분이라 존경도 합니다.


▲ 배우 문성근 씨가 5월 20일 오후 서울 신촌에서 야권후보로 출마한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유세를 펼치고 있다. 지금은 ‘야권 단일정당 100만 민란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 오마이뉴스)


그렇지만 야권단일정당을 주장하며 전국을 다니는 영화배우 문성근 님을 보면서 열정은 대단하지만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권영길 후보가 ‘100만 민중대회를 열면 세상이 바뀐다’고 난리쳤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하기만 합니다. 전국의 경찰이 동원되어 고속도로 입구를 막고 서울로 향하는 관광버스를 검문하고, 농촌지역에는 버스가 못 가게 경찰이 아예 드러눕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정권 말기라 하지만 권력의 입맛을 잘 아는 경찰 수뇌부가 과잉 충성을 하고, 윗선으로부터 ‘무조건 막아라’는 하명이 있었음은 중학생도 아는 상식이죠.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노동당의 정책 책임자인 이용대 씨가 끝까지 우겨 팔아먹지도 못하는 불량품인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들고 나와 진보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하는 전국의 당원들은 장사하는데 머리가 지끈했습니다. 3대 주주들이 합의한 것이었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고요.


자기 길을 가도록 놔두는 게 가장 좋은 일


사람이나 조직은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압니다. 진보정당이 비록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 상태지만 진보 정치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며, 자유주의자들은 자기들이 가고 싶은 길을 가면 됩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길이 이 땅의 민중들을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겠죠. 그렇지만 아무리 민주주의가 좋다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참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양극화에 떠밀린 민중들에 대한 명백한 폭력입니다.


자신들의 사리사욕만 채우는 집단이라면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말이라 언급하기 너무 어색하군요. 그런데 최근 소나 개나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않고 저작권을 도용해 가면서 ‘복지국가’를 들먹이는 야릇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진보정당이 거론할 때는 ‘예산이 없어 안 된다’고 하더니 갑자기 복지국가가 바로 도래할 것처럼 떠드니 참으로 의아할 뿐입니다. 저작권이야 양보하면 되니 제대로 한다면 뭐라 할 일이 아니죠.


문성근 님이 주장하는 ‘야권단일정당’은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단일정당의 기본정책이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지 않아 등대없이 항해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그래도 ‘100만 민란운동’을 하겠다면 말릴 이유도 없지만 ‘남의 기운을 빼지는 말라’는 부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한의 진보정당운동은 해방 후 뿌리가 잘렸다가 1987년 독자후보운동을 시작으로 겨우 부활해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명박의 눈에 벗어난 문성근ㆍ명계남


이명박이 보기에는 문성근ㆍ명계남 같은 배우들이 매우 불편한 가 봅니다. 그래서 충무로에서 사라진지 10년이 넘는 김지미라는 퇴물을 통해 환갑을 바라보는 두 분에게 “걔들이 아직도 활동하느냐? 배우는 정치색을 띠면 안 된다”고 하는 걸 보니 말이죠. 아무리 영화판이 선후배 사이가 엄격하다고 해도 기본이 안 된 퇴물이 조선일보를 통해 막말을 하도록 멍석을 깔아준 게 그 증거지요.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남을 존중할 줄 모르듯이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늙은이 같아 애처롭더군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부모님 같은 은사님들도 ‘윤 군, 자네’라며 대하셨으며, 교회의 어른들로 부터는 ‘윤 선생’이라며 대접받았지 함부로 해다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자식보다 어린 사람들에게도 하대를 하지 않은 분이었고, 친구인 장준하 선생님 역시 대학 학생회장들과 시국 문제를 말하거나 사석에서도 ‘이 선생 생각은 어떤가’라고 하셨지 ‘나이가 적다고 반말하지 않았다’고 큰아드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역시 큰일을 하는 분들은 인품 또한 고결하고, 사람을 대할 때 예의를 갖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낍니다. 미성년자를 벗어나 성인이 되면 누구나 대접을 해 줘야 한다는 큰 어른들을 보면서 티를 내려는 제 자신을 성찰합니다. 아무리 이명박 정권을 향해 같이 싸우지만 그 너머를 바라보는 눈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서로의 차이가 분명히 있는데 ‘야권단일정당을 하라’고 하는 것은 소수정당에게는 폭력입니다. 좋은 연기자로 늙어가는 영원한 배우 문성근을 계속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