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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선배님이 정치 안할 거 아니잖아요?


지난 금요일(16일) 대구에서 내가 몸 담고 있고 활동하는 진보신당 녹색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지역에서 하는지라 회의 준비도 하고 제안할 안건을 검토하기 위해 같이 점심을 먹었다. 회의란 말이 안겨 주는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매월 ‘녹색당원 점심먹기’란 이름으로 모인다. 오겠다는 사람들이 몇 명이 말도 없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완전히 김 빠진 맥주가 되고 말았다. 오전에 문자까지 보냈는데 대답도 없으면 정말 짜증나지만 화만 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명색이 진보정당에 몸담고 있는지라 하고 싶은 말을 피해야 할 때는 은근히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한다. 이런 나를 ‘까칠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 정도 원칙은 있어야 한다’며 좋게 봐 주는 동지들도 있다. 작년에 ‘삽질 대신 일 자리를, 언론악법 철폐’ 전국 자전거 일주를 한 경험을 살려  4대강 파괴 때문에 상대적으로 묻힌 골프장 반대와 국공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반대 싸움을 주요 사안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자전거 일주를 제안했다.


휴가철이 끝난 ‘8월 말과 9월 초순이 언론이 가장 조용한 철에 시작하자’고 안건을 올렸다. 모두 외면하는 민생 사안을 묻히지 않고 부각시키는 게 진보정당이 할 일이다. 적당히 얼굴 팔며 언론플레이나 하려 들지 말고 ‘해당 지역 주민들의 생존과 직접 연결된 문제’를 묻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정치력이기도 하다. 어림짐작으로 잡아도 최소한 3주는 몸을 던져야 하는 일이라 다른 환경단체에서 부담스러워 받을지 걱정이 된다.


‘할 만큼 했다는 자위하는 운동’이 아니라 핵폐기물을 실은 배의 항해를 저지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무보트로 가로막는 그린피스처럼 적극적으로 몸을 던져서 하자”고 나서는 게 진보정당의 의무이기도 하다. 지금의 환경단체 역량을 볼 때 과연 받아 들을지 의아한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자전거 타기로 몸이 단련되어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 거절할 수도 없고 ‘같이 하자’며 선뜻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으리라 본다.


우연히 대타로 하게 된 작년의 자전거 일주 경험이 이럴 때 귀하게 쓰인다고 생각하니 건강한 몸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제안문을 보던 후배가 “선배님, 정치 안 할 거 아니잖아요. 시당(위원장) 일은 할 의향은 없으십니까”라고 물었다. 나이 쉰 줄에 들어선 중늙은이가 정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이런 저런 복잡하게 얽힌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어 움직이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울 때가 참 많다.



지방선거에 출마해 광역이나 기초의원이라도 당선되면 다행이지만 대구 지역에서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2008년 민주노동당과 헤어지면서 준비했던 여러 가지 일이 뒤틀리고, 개인적으로 송사에 몇 번 휘말리다 보니 작년 자전거 전국 일주 말고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매사에 성실한 동지이자 후배가 하는 말이라 에둘러 표현할 수가 없어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을 말했다. 지금까지 지역위원장도 한 번 하지 않았는데 그리 잘 봐주니 과분하기 그지없다.


몸담고 있는 조직이 어려울 때 나서서 조금이라도 거드는 게 구성원으로서 예의이지만 역량도 부족하거니와 움직이지 못하는 사정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이왕할 거면 이렇게 어려울 때 움직이는 게 가장 좋다’는 후배의 애정이 듬뿍 담긴 말이 고맙기만 하다. 분당 전 보다 절반 이하로 줄어든 당의 살림살이는 상근자들의 활동비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어렵다. 온갖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진이 다 빠지는 게 위원장을 비롯한 상근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거기에다 바른 말 임에도 불구하고 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할 때도 많아 하고 싶은 말 하고 살아야 하는 나로서는 그리 적합한 자리가 아니다. ‘원칙만 말 한다’고 찍혀 있는 처지라 더욱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교통비와 밥값도 빠듯한 대한민국 정부가 정한 최저 임금에도 근처에도 못 미치는 활동비는 얇기 그지없는 지금의 내 주머니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럴 때 “마누라 신세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평소 헛말을 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며 살아온 동지다. 아무리 나이가 적어도 성인이면 반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깍듯하다. 정말 반듯해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무게있는 후배의 말인지라 몇 일 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동지와 수시로 만날 수 있는 나로선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이제 겨우 터파기 하는지라 남들이 외면하는 생태 문제를 같이 고민할 수 있는 동지로 지내니 기쁘기 그지없다. 과분한 말에 너무 고마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덧 글: 내년에는 지역위원장 경선에는 출마를 해 볼 생각입니다. 민주정당이라면 단일 출마가 아닌 경선으로 가야 흥도 나고 투표하는 맛도 나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