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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

 

남한사회에 주체사상파는 분명히 있다.


한국 사회 진보진영에는 민족순혈주의에 먹을 거는 이른바 ‘주사파’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태동한 주체사상은 한국전쟁을 치른 후 외세로 부터 체제를 지키려는 고민 끝에 태동한 특수한 상황이 만든 것입니다. 항일 무장 투쟁 당시부터 근원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융단폭격으로 평양 시내에 성한 집이 5채가 되지 않았을 정도라 하니 짐작이 갈 겁니다. 압록강은 중국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수시로 융단폭격을 해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 김일성 주석의 97번째 생일을 맞은 2009년 4월15일 평양 중심가에 자리한 그의 동상 앞에서 북한 주민들이 추모식을 열고 있다. 북한에선 김 주석의 생일을 ‘태양절’이란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사진: REUTER통신)


그런 위기의식을 느낀 북한의 지도부는 체제 유지를 위해 고민하던 끝에 ‘주체적으로 해결하자’는 합의를 봅니다. 당 중앙을 중심으로 일심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당 중앙은 오류가 없다’는 이른바 수령론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소련이나 중국과는 또 다른 철학입니다. 그래서 수령의 현장 지도는 곧 교시가 되어 수정할 수 없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집니다. 아무리 특수한 상황을 이해한다 할지라도 ‘당 중앙의 판단과 결정은 절대 오류가 없다’고 하니 황당하죠.


북한만 그런 것이 아니라 90여년 전 유럽도 ‘당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과 절연하는 것은 급진파들에게는 거의 당연시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권위주의적인, 그 당시 유럽 문화 풍토에서는 당에서 지도자(장군)와 이론가(참모본부)를 받드는 것도 당연시되었습니다. 그 시대치가 그런 통념에 가까웠으니까요. 상황이 변화면서 급진파들의 논리는 서서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대중들이 따라주지 않으니 설 자리가 없어져 버린 것은 당연하죠.


주체사상은 낡아서 폐기해야 할 철학


주체사상은 태동 당시는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낡아빠진 유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것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일부 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한국사회를 변혁하자는 세력 중 소수가 주체사상에 심취를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단파라디오를 틀어 놓고 북한의 신년사를 달달 외우다시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에 희망이 안 보이니 택한 것이지요. 암울한 시대가 낳은 비극적인 산물로 서글픈 사실입니다.


솔직하게 ‘우린 주체사상이 좋다. 이건 우리들의 철학’이라고 말하면 좋으련만 속은 숨기고 다른 것으로 포장해 버리니 그들이 밉습니다. 계절이 변하고 유행이 바뀌면 옷을 바꿔 입듯이 시대가 변했으니 낡은 틀을 버리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하건만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마치 인간 기계들 처럼 중앙의 몇몇 골목대장들이 결정해 지침을 내리면 그냥 움직입니다.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마치 목사들의 말에 무조건 ‘아멘’이라며 맹종하는 맹신도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로 통일운동에 참여하는 이른바 NL 계열에 포진해 있는데 오로지 ‘통일’만 말하고, 모든 문제를 미 제국주의 탓으로만 돌립니다. 주사파는 극소수이지만 이들과 서로 얽힌 통일을 말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저는 주체사상을 북한이 채택하던지 개인이 좋아하는 것을 탓하거나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로 인한 해악이 너무 크기에 싫어합니다. 주체사상을 싫어하지만 북녘 땅의 우리 동포들은 결코 미워할 수 없습니다. 피를 나눈 동족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덧 글: 불순한 좌파란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현실이 너무 스글프기만 합니다. 주체사상에 얽매여 있는 북한이지만 일제 잔재는 철저하게 청산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남한은 그와 반대인 것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