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반도와 국제

천안함 침몰 방송 중 눈물 흘린 이명박의 ‘엉성한 연기’

 

라디오 방송 중 흘린 눈물이 연기가 안 되려면


‘천안함 사고’는 중대한 위기 상황이다. 사고 발생 25일이 지났는데 그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냥 오리무중인 것이 아니라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매우 걱정스러운 위기 상황이다. 천안함의 비극이 주는 위기는 대단히 심각하다. 하지만 비극이후 갖가지 억측과 은폐의혹 등으로 흉흉해진 민심 또한 대단히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움직이는 걸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게 아니라 뒤죽박죽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가진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라디오, 인터넷 연설’을 마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흔히 하는 말로 ‘당나라 군대’보다 더 못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전국에 방송된 ‘천안함 희생 장병 추모 라디오. 인터넷 연설’을 통해서 천안함 침몰사고로 희생된 승조원 46명을 일일이 호명하며 사고원인 규명과 단호 대처 등을 언급했다.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무한한 책임과 아픔을 통감하면서 사고 장병들과 그 가족들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 그러면서 원인을 북한 관련으로 몰아 놓은 것은 진상규명의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은 ‘명확한 침몰원인 규명과 단호한 대응’ 방침을 거듭 천명했다. 정부가 ‘국가안보 차원의 중대 사태’로 규정한 이번 사고의 원인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규명함과 동시에 이를 계기로 국가 안보태세를 재점검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날 특별연설은 천안함 사고의 원인 규명 및 대응을 놓고 국론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 것이어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국론분열을 진정시키는 데는 턱없이 역부족이었다는 점에서 ‘함량 미달 연기’란 비난도 받는다.




침몰 사고와 관련한 유언비어 차단부터 하라!


지금 대통령이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사고원인을 놓고 벌어지는 유언비어 발생의 불길을 잡아 민심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유언비어는 후진 사회에서나 발생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관련 당국의 적절한 대처가 부족할 경우 유언비어는 걷잡을 수 없이 발생한다. 지금 이 나라가 바로 그런 상황이다.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통해 사고원인을 규명하겠다고 거듭 언급했지만 사고 원인에 대해 정부와 집권당, 일부 언론은 북한의 개입설을 기정사실화하는 쪽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구체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다. SBS가 지난 주 이번 사고에 대해 심층 분석한 프로를 방영한 것은 그런 면에서 돋보인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천안함 미스터리를 분석해 외부 폭발 믿기 어려운 10가지 이유를 밝혔다. 이 프로는 폭발 관련 전문가들의 상식으로 검증할 경우, 어뢰인지 기뢰인지는 금방 판명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SBS가 심층 보도를 한 뒤에도 다른 언론은 여전히 어뢰 원인 설을 대서특필하는데 바쁘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국회 등의 공식 석상에서 수차에 걸쳐 북측의 연계 가능성을 열어놓는 발언을 했으며, 군은 말을 바꾸어 가며 장관의 말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18일 KBS 1TV ‘일요진단’에 출연, “가상적인 얘기이지만 천안함 침몰사고가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난다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엔 안보리에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 장관의 말은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고위 공직자가 할 말이 아니다.


북풍한설(北風寒雪)의 유혹이 그리도 그리운가?


이명박 정부가 선진화를 앞세우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 정권을 지지한다는 일부 언론과 정치집단들이 가장 후진적인 태도로 ‘북풍아 불어라’하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아직 모든 것이 애매한 사고원인을 북의 소행으로 단정 지으려 기를 쓴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의 경우 지난주에는 북한의 연루가능성을 언급하다가 이번 주 들어서는 신중론을 펴는 무책임한 태도도 유언비어를 부채질하는 부적절한 태도다.



일부 수구언론과 단체, 집권 여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까지 언급하면서 북측이 이번 사고를 일으킨 양 몰아가고 있다. 이는 ‘6.2 지방선거’를 겨냥한 것으로 일시적인 정략적인 이익을 거둘지 몰라도 대국적 차원에서 매우 수치스런 일이다. 천안함 함미 인양 작업에서 보듯 민간 해난 구조업체의 기술수준은 가히 세계 정상급이라는 것이 언론을 통해 확인되었다. 그러나 군의 거듭된 시행착오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 해군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민간업체가 조선업 최강국의 면모를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국방장관이 뒤늦게 실토한 것처럼 위기 대응 지침조차 없었던 맹물 해군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군은 뻔한 사실을 군사기밀을 앞세워 감추는 방식을 거듭하는데 이는 웬만한 군사정보는 인터넷에서 다 확인되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 군이 사고발생 규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관련 정보를 비공개로 하거나 그 내용에 대해 말 바꾸기를 한 것은 치명적이다.


진상규명 후 ‘엄중한 문책’이 민주주의다.


외부 충격이냐 아니냐는 폭발 전문가들이 말하는 어뢰와 기뢰 폭발에 반드시 따르는 섬광과 폭음, 물기둥 등으로 검증 가능할 터인데 사고 발생이후 한 달이 가까이 다가오는데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런 것이야 말로 손꼽히는 한국군의 수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대통령은 이런 위기 상황을 신속히 진정시키면서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할 책무가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해 봐서 안다’고 큰소리 친 대통령이 제대로 한 게 뭔가?


천안함 사고 이후 벌어지는 유언비어 난무와 같은 부적절한 현상을 신속히 잠재울 수 있도록 정부와 군을 잘 이끌어야 한다. 대통령이 여야 3당 대표와 오찬간담회를 갖는 데 이어 전직 대통령, 군 원로, 종교단체 지도자 등을 잇 따라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갖는다고 발표했다. 이런 자리가 보여주기 식의 요식행위로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천안함 침몰 사고 후 위기 해소의 지도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 해 ‘군 기피 대통령의 한계’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사고 직후 ‘천안함의 내부의 사정으로 침몰했다’며 교통정리를 한 미국이 말을 바꾸고, 청와대와 국방부가 ‘북한 연루설’을 수시로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명확한 사고규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이미 각본이 짜여 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가장 완벽한 알리바이는 정직’이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지는 게 민주주의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 눈물만 흘린다고 될 일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