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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PD수첩 ‘성 접대’ 검사…관행화된 향응이 원인

 

업자 돈 대주며 ‘보험’, 검사 뒤봐주며 맞장구

‘떡검’ 등 느슨한 조사 ‘곪은 상처’ 다시 도져



문화방송 ‘PD수첩’이 보도한 건설업체 전 사장 정아무개씨의 ‘검사 향응 리스트’는 검찰 안 ‘스폰서’ 문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씨는 검사를 관리하기 위해 금품과 술자리 성접대까지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에 드러난 스폰서 문화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도 나온다. 검찰총장 후보자가 15억원이나 되는 돈을 차용증 한 장 없이 빌리는 현실을 볼 때 뒷 거래 문화는 훨씬 더 뿌리 깊이 곪아 있다.



스폰서는 인간관계로 인지상정이라고 착각하는 검찰


검사들은 이런 거래를 인간관계의 일종으로 착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속이 상하기도 하고, 보지 않아도 내용을 알 것 같아 피디수첩을 보지 않았다”며 “많이 사라져 가고 있지만, 스폰서 문화를 인간관계의 한 종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정씨에게서 접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부장검사가 방송에서 “어느 정도는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라고 항변한 것이 이런 정서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검사와 스폰서의 관계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인지상정’이란 말은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다. 한 검찰 관계자는 “부장검사 정도 되면 밑에서 고생하는 부하들에게 회식 한 번쯤은 제대로 해줘야 리더로서 힘이 실린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라며 “공식적인 월급과 수사비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스폰서’ 생각이 날 법도 하다”고 토로했다. 반면 ‘스폰서’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검찰이 지니고 있는 강력한 힘에 눈독을 들이기 마련이다.


정씨 역시 방송에서 “접대를 해두면 무슨 어려운 일이 있다 그러면 100% 봐준다. 검찰, 경찰 한마디에 따라서 회사가 죽고 살고 그런 시대였다”고 말했다. ‘선배로서의 권위’를 사고 싶은 검찰과 검찰의 힘을 바라는 ‘스폰서’는 인지상정이 아닌 철저한 ‘거래관계’다. 문제는 이런 거래관계가 ‘이래도 되는구나’ 하는 학습효과를 통해 검찰 내부에 문화처럼 퍼진다는 것이다.


정씨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한번은 부장검사를 통해 자리를 가졌던 평검사들이 ‘부장님 없이 우리끼리 따로 보자’고 해서 함께 술을 마시고 계산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부장검사는 검사장과 함께 정씨를 만나고 나서 불과 10여일 뒤에 자기 부서 회식에 정씨를 스폰서로 부르기도 했다. 이런 ‘스폰서’의 규모는 검사가 가진 권한에 비례한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평가다.

▲ <문화방송>이 20일 밤 방영한 ‘PD수첩’에서 전직 건설업체 사장 정아무개씨가 “2003년 검사들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성접대까지 했다”고 주장한 부산 동래의 한 유흥주점 들머리의 21일 새벽 모습. (사진: 연합뉴스)


검찰의 비대한 권력이 근본 원인?


지난해 7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한 사업가에게 담보 없이 15억5000만원을 빌리고, 부부동반으로 함께 외국여행을 다녀오는 등 스폰서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후보직을 사퇴했다. 두 달 뒤에는 민유태 당시 전주지검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1만 달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직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검찰이 구조적으로 너무 많은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스폰서’ 문화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사법)는 “스폰서 문화는 결국 검찰이 비대한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불거지는 문제”라며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법원의 결정에 이르기 전에 너무나 많은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탐내는 스폰서들이 줄을 서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내부 비위 사실이 발각돼도 자진 사임하고 변호사 개업을 하면 그만인 허술한 감찰 시스템이 검찰 내부의 스폰서 문화 근절을 어렵게 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사법)는 “일벌백계를 주장하는 검사들이 스스로의 비위 사실에 눈감는 이상 검찰의 스폰서 문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진상규명위원회 역시 검사들로만 진상조사단이 꾸려진다면 그 결과를 낙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깊숙이 뿌리박힌 일이 벌어진 사건인데 제대로 조사가 된다고 믿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잘못된 관행은 뿌리 뽑지 못하면 그 조직은 죽을 수 밖에 없다. (한겨레 인용)


 덧 글: 점심 한 끼도 공짜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검사들이 수사를 제대로 할 지 의문이다. 대학병원의 각종 비리도 범죄가 아닌 ‘관행’으로 착각하는 의사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