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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치

아직도 프락치 공작은 진행 중 40대 중후반 이상 연배는 프락치란 말을 듣기만 해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날 겁니다. 그런 지저분한 공작이 아직도 진행 중이란 말에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라는 반응보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통합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인 작년 봄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최근 입당한 당원인데 ‘소속당부가 노동위원회’라고 하더군요. 시도당에 당적을 두는 데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 나이에 우쭐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러려니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용어와 호칭을 사용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고, 심지어는 ‘동지의 아드님은 몇 살입니까?’라기에 따로 불러‘너, 몇 살이야? 우리 당에 비정규노동위원회는 있어도 아직 노동위원회는 없다’고 하자 사색이 되더군요. ‘네 보다 선배인 .. 더보기
삶의 고백2 ― ‘윤희용이 프락치’라는데?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라 2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같은 민중교회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프락치란 소문이 돈다’는 말을 들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그 말은 모든 걸 한 방에 날려 버렸다. ‘그 놈 프락치’란 한 마디에 멀쩡한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조직 보존을 위해 프락치로 몰아 생매장 시킨 일도 많던 시절이라 정말 무서운 말이었다. 대구지역 운동권의 초보였던 스물여덟 청년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렇게 저질러 놓고 그는 몇 년 후 대구를 떠난지라 잊어버리고 살았다. 재작년 여름 남원에서 녹색위원회 첫 모임을 하고 용산에 문상 갔다가 보고, 그 후 대의원대회에서 만나 더 놀랐다. 아무리 24년 전의 일이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아 .. 더보기